[박정호의 창업실전강의]<17>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해야

[박정호의 창업실전강의]<17>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해야

창업자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를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일 것이다. 죽음의 계곡은 실리콘밸리에서 멀지 않은 곳인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모하비 사막의 북쪽에 위치한 국립공원을 의미한다. 이곳은 수백만 년 전, 내륙해가 증발하고 그 자리에 소금만 남아 생성된 곳이다. 사막의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아 평균 온도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56.7℃까지 올라간다. 이 때문에 생물체가 살기에 극도로 척박한 환경이다.

'죽음의 계곡'은 이 같은 환경을 빗대어 기업의 위기를 표현하는 용어로 쓰인다. 지금은 기술개발에 성공한 벤처기업이 이후 자금 부족으로 인해 상용화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 넘어야 할 어려운 시기를 지칭한다.

'죽음의 계곡'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는 창업자는 없을 것이다. 창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죽음의 계곡이 의미하는 보편, 피상적 내용만 알 것이 아니라 창업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지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먼저 많은 스타트업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보편적 이유부터 살펴보자. 기술 개발 완료 이후 외부자금의 성격은 급변한다. 창업 초기 엔지니어는 대학으로부터 학술적 목적 아래 펀딩을 제공받거나 정부자금을 활용해 기술 연구개발(R&D)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기술 개발에 성공해 제품을 양산하고 판매하면 민간 투자자본을 사용한다. 이때 민간은 수지타산을 면밀하게 따진다. 자신에게 얼마의 수익이 어느 시점에 발생하는지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당초 기대보다 성과가 저조하면 투자자금을 회수하거나 당초 설정한 목표 수익이 달성되면 조기에 자금을 회수하기도 한다.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자의 대응에 대처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원인은 기술 개발 이후 외적 능력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획, 생산, 마케팅, 애프터서비스(AS)에서 기술 개발에 상응하는 수준의 학습이 요구된다. 그러나 많은 창업자가 기술 확보 이후 이런 문제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투자자는 제품 양상에서부터 최종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확신을 얻지 못하면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과대평가해 외부 투자자와의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에 남다른 애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애정이 기술에 대한 과대평가로 이어져 투자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된다면 결국 사업화는 요원해진다.

첫 제품 출시 이후 다음 제품에 대한 계획이 없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첫 제품이 안정적으로 출시되어 판매되기 시작하면,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직원 수도 늘리고, 매장관리와 AS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연이어 또 다른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데, 후속작을 미리 구상하고 있는 기업가는 많지 않다. 이 과정에서 초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죽음의 계곡을 넘기 위해서는 앞서 열거한 문제점을 숙지하는 것도 유효하지만, 이보다는 종사하고 있는 산업군, 제품군의 특수성으로 인해 유발되는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적 특수성 속에서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동종 산업군, 동종 제품군을 기획해 판매하는 사람들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해당 분야에서 활동해 본 경험을 갖고 있는 기존 창업가 내지 관련 분야 종사자와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