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간이 가진 특징들이 다른 동물에는 없는 고유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과학은 그런 생각이 옳지 않음을 보여 왔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만 있을 것 같던 의사소통 능력은 돌고래나 코끼리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지능은 문어나 까마귀를 비롯한 많은 동물에서도 발견됐다.
그럼 보행은 어떨까? 두 다리로 걷는 것이 인간뿐일까? 우리에게는 삭힌 음식으로 유명한 홍어가 이 질문에 답한다.
◇홍어의 작은 두 '다리'와 보행의 진화
홍어에게는 두 쌍의 지느러미가 있다. 한 쌍의 커다란 지느러미는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데 쓰고 나머지 한 쌍의 작은 지느러미는 몸통 아래쪽에 붙어 해저를 기어 다닐 때 쓴다. 홍어가 이 작은 지느러미 한 쌍을 좌우로 굽혔다 폈다 하며 바닥을 기는 모습은 마치 인간이 두 다리로 걷는 모습과 닮았다. 홍어는 지느러미를 다리처럼 이용해 '걷는다.'
홍어의 작은 지느러미와 인간의 다리는 겉모습과 보행이라는 기능만 닮은 게 아니다. 최근의 한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원시어류인 작은고슴도치홍어(little skate, Leucoraja erinacea, 상어와 가오리의 가까운 친척)의 보행을 제어하는 유전자와 신경세포는 인간에서 사지 근육을 조절해 보행을 돕는 신경세포와 동일하다.
이 연구 결과는 보행을 제어하는 신경망의 기원이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오래됐을 거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보행은 인간이나 포유동물의 계보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홍어와 포유동물의 공통조상에서 나왔을지 모른다. 연구자들은 그 시기가 네 발이 달린 작은고슴도치홍어의 조상이 살았던 약 4억2000만년 전일 것이라 추측한다. 이때 보행이 진화한 게 맞는다면 최초 육상 척추동물이 바다에서 나온 시기보다 2000만년 앞서는 셈이다. 보행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홍어로 파악하는 인간
물론 홍어와 인간에서 걷는 데 필요한 유전자와 신경세포가 동일하다고 그들의 조상까지 해당 유전자와 신경세포를 보유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또 홍어와 인간의 보행이 진화한 세부 과정이 어떤지는 아직 모른다. 걷기는 인간과 홍어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발달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의 보행과 유사한 보행 특성을 가진 다른 동물들을 추가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래도 홍어의 보행을 신경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우리 인간의 중요한 비밀을 푸는 열쇠를 얻을 수 있다. 홍어는 보행용 지느러미 하나당 단 여섯개의 근육만이 있어, 사지 하나당 수백 개의 근육을 가진 복잡한 포유동물인 인간에 비해 연구하기가 상대적으로 편하다. 사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자신에 대해 낱낱이 알지 못한다. 홍어 연구로 보행 관련 신경망에 관한 자세한 지식을 얻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보행을 제어하는 신경 회로가 손상되거나 보행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 장애를 앓는 사람을 치료하려면 보행이란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걸을 수 없는 사람이 걷는 기적은 홍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홍어로 우리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다. 홍어는 그저 잔칫상 음식을 넘어서는 귀한 존재이다. 이게 다 홍어가 인간처럼 걸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발로 걷는 것이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니어서 섭섭한가?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닌가!
글:이보윤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