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의료 빅데이터,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

윤도흠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윤도흠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의료서비스는 검사를 통해 산출된 데이터를 의료 전문가가 해석하면서 행위가 일어난다. 지식기반 전형 산업으로 분류되며, 사회 기간산업 분야다. 의료 분야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의료 데이터 지식을 쌓고 활용하기 위한 체계화에 모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접근도가 매우 높다.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방문 빈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5배, 미국의 4배에 이른다. 고가의 검사장비 보급률도 매우 높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건강검진 사업이 펼쳐지는 동시에 민간 건강검진 시장도 크게 형성됐다.

과다한 의료 이용에 따른 부작용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데이터 축적과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특화된 방대한 데이터를 매일 생성한다. 아직은 표준화가 미비하고 의료기관 간 데이터 연결성이 부족한 한계가 있다. 3분 진료로 대변되는 의료 체계 특성 탓에 생성된 데이터의 80% 이상이 버려지거나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방치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도 의료 빅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인식, 공공기관 중심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 부문 의료 빅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연구비 지원과 규제 개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건강 정보의 자기결정권 침해, 개인정보 유출, 건강불평등 심화 등 의료 빅데이터 활용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건강 관련 데이터 소유권과 접근 권한 같은 근본 문제부터 △데이터 수집과 관리 방식 △공공과 민간 역할 △학술 활용과 상업 활용 구분 △상업 활용 시 보상 체계 등 의료 빅데이터 활용 촉진을 위해 풀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좀 더 냉정하게 살펴보면 현재 특정 의료기관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데이터 관련 문제는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들은 의료 데이터로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하게도 의료기관은 보유한 데이터를 기관 소명에 맞게 사용하면 된다. 즉 환자 진료 과정에서 생성된 의료 빅데이터는 환자에게 제공할 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해 지속 사용돼야 한다.

연세의료원은 지난 한 해 동안 의료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구축 사업을 진행했다. 산하 병원들이 서로 다른 형태로 관리하던 의료 데이터를 통합하고 익명화, 효율 경영과 연구개발(R&D)을 위해 만든 플랫폼에 접목시켰다.

우리는 왜 당장 수익과 이어지지 않을 데이터 플랫폼 제작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했을까. 병원 경영과 R&D는 언뜻 목표가 달라 보이지만 궁극의 지향점은 같다. 바로 '더 안전하고, 더 효과적이며, 더 편안한 진료'를 추구하기 위함이다.

플랫폼 구축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몇 개 파일럿 프로젝트들도 이뤄졌다. '입원 환자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이용한 낙상 고위험군 찾기 프로그램'과 '안과수술로 일시성 시력 장애를 겪는 환자들에게 음성 진료 안내문을 읽어 주는 서비스'는 괄목할 만한 효과를 거뒀다. 두 프로그램은 환자 안전과 편의를 고민하고 있던 진료 현장 의료진의 제안에서 시작됐고, 원내외 데이터 전문가 도움을 받아 개발됐다. 이후 다시 환자 진료 현장에 적용된 사례들이다.

환자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진료를 받게 된 것이 핵심 성과다. 이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기술은 부가 성과물이다.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학술 성과를 낼 수도 새로운 의료기기를 만들 수도 있고, 데이터를 이용한 수익 사업 개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의료 데이터를 사용하는 근본 목적은 안전한 의료, 효과 높은 의료, 편안한 의료 추구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병원이 원내외 파트너와 함께 의료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해석하다 보면 필요한 기술이나 연관 산업 발전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확신한다. 대한민국 의료기관이 짊어져야 할 마땅한 소명이다.

윤도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severance@yuhs.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