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창업실전강의]<68>기업이 공짜로 물건을 판매하는 또 다른 이유에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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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적인 기업인 보쉬-지멘스가 브라질 빈민 지역에서 자신들의 신제품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할인도 아니고 공짜였기 때문이다. 보쉬-지멘스가 냉장고를 공짜로 나누어줄 수 있었던 이유는 브라질 전력회사 덕분이다. 전력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높은 고정비용이 유발된다. 특히 전력은 사용량이 적다고 해서 발전기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발전기를 껐다 켰다 할 때마다 천문학적 비용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또한 전력회사는 사람이 사용하는 전체 전력량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전력을 지속 공급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흔히 블랙아웃(Black Out)이라고 부르는 대정전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밤에는 사람이 사용하는 전력량이 많지 않지만 공급해야 할 전력량은 사람이 가장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오후 12~16시 사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력회사는 사람이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주면, 자신들의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더욱이 최근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력회사 상황이 열악해졌다.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지 못할 경우 다양한 추가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보쉬-지멘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해 청정개발체제(CDM)을 활용해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CDM 사업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인정하는 선진국-개도국 간 온실가스감축사업이다. 개도국은 사업 유치를 통해 탄소배출권 수익과 기술이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선진국은 본 사업에 참여하여 얻은 이산화탄소 감축량을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활용할 수 있다.

보쉬-지멘스는 브라질 전력회사와 손잡고, 빈민가에서 전기 사용량이 많은 구형 냉장고를 수거하고 공짜로 신형 냉장고를 나누어 주었다. 보쉬-지멘스는 이로 인해 전기 사용량이 감소하여 발생한 전력회사의 이익과 CDM 실적을 자신들의 주 수익 모델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보쉬-지멘스가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냉장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생산설비 투자와 생산 인력을 보유해야 한다. 이러한 설비투자와 인력은 냉장고가 많이 팔리던 적게 팔리던 일정 비용을 계속해서 지불해야 하는 고정비용 성격이 짙다. 그런 상황에서 공장을 계속해서 가동하는 것은 회사 손실을 줄이거나 보다 큰 이익을 창출하는 주요한 방법이다. 때문에 보쉬-지멘스는 구매력을 갖고 있어 신형 냉장고를 구매하고자 하는 기존 고객에게도 냉장고를 판매하고, 구매력이 없어 신형 냉장고를 구매할 수 없는 브라질 빈민가 사람에게도 냉장고를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창업 후 사업 경험이 부족한 경영자 중에는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예상보다 판매량이 저조해지거나 국내외 경기가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급감할 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우리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중에서 공짜에 가까운 것이 있다면, 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손실을 줄이거나 혹은 추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 얻어진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예비창업자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정호 KDI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