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창업실전 강의]<71>창업 초기에는 까다로운 고객을 먼저 공략해라

[박정호의 창업실전 강의]<71>창업 초기에는 까다로운 고객을 먼저 공략해라

기업이 특정 제품 내지 서비스에 비교우위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 브랜드, 판매망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인이 형성된 보다 근원적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까다로운 고객'이다. 특정 상품 내지 서비스를 향유하는 소비자가 어떠한 의식수준 내지 눈높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해당 산업이 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 CEO는 흔히 '한국은 글로벌 기업의 무덤'이라 표현한다. 해외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기업도 한국시장에만 진출하면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퇴출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세계 1, 2위 유통기업인 월마트와 까르푸는 이마트, 롯데마트 등 토종기업에 밀려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채 결국 철수했다. 구글과 MS워드는 각각 포털사이트와 워드프로세스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국가가 구글과 MS워드 때문에 자국에서 자체 개발한 포털사이트와 워드프로세스 운영을 중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국만큼은 예외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국어 문서 편집기(아래아 한글)를 가진 미국을 제외한 세계 유일의 나라이다. 포털사이트 역시 해외에서는 절대적으로 구글 중심으로 검색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다음의 시장 점유율이 90% 넘는 수준이다.

이처럼 유달리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기업보다 토착기업 제품과 서비스가 살아남은 이유를 한국GM사장을 역임한 제임스 김은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 성향에서 찾고 있다. 그는 언론 기고문에서 '우리 소비자는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며 구매에서부터 애프터서비스까지 소비 및 사용 전 과정에 걸쳐 엄격한 잣대로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국내 소비자의 세계 최고 수준 눈높이를 해외 기업이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내용과 함께 '최근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한국을 세계 최초 개봉 국가로 선택해 세계 흥행 성적을 사전에 예측하고, 글로벌 게임 회사는 자사의 주요 게임을 출시하기 전 사전 테스트에 한국 이용자를 대거 참여시키고 있다'고 언급했다. 많은 글로벌 기업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혁신시키기 위해 한국 소비자에게 먼저 평가받고 있는 형국을 소개했다. 이런 내용은 까다로운 소비자가 비교우위를 만들어 내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구한 역사' 또한 비교우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요한 근거다. 우리는 스위스에서 만든 시계라는 이유만으로 여타 평범한 시계와의 성능 차이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거액을 주고 구매하고 있다.

패션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탈리아나 프랑스 옷이라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들 국가가 해당 산업 부분에서 이 같은 비교우위를 내포하게 된 가장 큰 배경에는 오랫동안 해당 산업 분야에서 활동해 오면서 쌓은 명성과 전통 때문이다.

많은 국가에서 스위스 시계 내지 프랑스 원단과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역사와 전통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들 나른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비교우위를 누리고 있다. 우리 주위의 많은 음식점이 최신 시설 내지 요즘 입맛에 부합하는 음식 맛을 내세워 승부를 보려하기 보다는 실제 원조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원조'라는 간판을 내걸며 영업을 하는 이유는 유구한 역사 내지 전통성에서 나오는 비교우위 요소가 상당한 수준의 부가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스마트폰을 제일 잘 만드는 국가는 한순간에 다른 나라로 바뀔 수 있지만 패션 명가, 고급 명품 시계는 기존 국가를 대체할 수 있는 명성을 다른 국가가 단기간에 획득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역사' 또는 '전통'이 내포하고 있는 비교우위의 힘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할 때 특정 기업이 까다로운 시장 내지 고객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해당 기업은 남다른 평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박정호 KDI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