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일본의 두 번째 '타도 삼성'

[ET단상]일본의 두 번째 '타도 삼성'

일본의 '타도 삼성'은 2003년에 처음 시도됐다. 지금은 사라진 일본 통산성은 당시 '타도 삼성, 타도 인텔'이라는 부제가 붙은 '히노마루 반도체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일장기를 뜻하는 '히노마루'를 이름에 붙인 것은 그만큼 일본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라는 의미였다.

1980년대에 세계 시장 절반을 점한 일본 반도체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원대한 목표 아래 도시바, 히타치제작소, 르네사스테크놀로지 등 일본 11개 제조사와 연구소·대학이 최고의 두뇌와 장비를 동원해 공동으로 참여했다. 한발 앞선 신제품을 개발하고 삼성과 인텔을 넘어서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6년 6월 도시바가 독자 생산을 결정하면서 공동개발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최근 시작된 일본의 소재 전쟁은 이처럼 오래 전부터 기획돼 왔다.

2019년 일본의 '타도 삼성'이 다시 시도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품 가운데 일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면서 대체가 쉽지 않은 핵심 소재만을 골라 수출 규제 강화를 선언했다. 상당히 노골화된, 매우 치밀하게 준비한 기색이 역력하다.

제2차 '타도 삼성'은 성공할까.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소개한 삼성의 '초격차' 전략으로 아베의 도전을 조용하고 확실하게 응전해 주기를 뜨겁게 응원한다.

다만 이와 별개로 이번 사태를 교훈과 자성의 기회로 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통해 또다시 확인하게 된 것은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 경쟁력이 여전히 일본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해마다 20조원 이상 대 일본 소재·부품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는 소재·부품 분야에 '온리원' 기업, 즉 특정 소재·부품을 독보 기술력으로 독점하다시피 공급하는 기업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우리에겐 이러한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통합관리시스템(SIMS)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매출액 500억원 이상, 수출 50% 이상인 중소 소재·부품 기업을 추출해 보니 160개사 이상이다.

이들이 바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소재·부품 중핵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보유한 '소중한 기업'이다. 대·중소기업이 상생 협력하고 연구소와 대학이 힘을 합치면 '소재 강국, 부품 대국'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효율성 관점에서 글로벌 소싱에 의존해 온 우리 대기업도 기존 관행과 관점을 재검토해야 한다. 공급처 다변화를 위한 비용을 당연하고 중요한 '리스크 관리비'로 계상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는 지속 가능한 경영을 추구하는 글로벌 대기업과 선진 금융기관의 핵심 기능과 조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온리원 중소기업이 많아질 수 있을까. 기초과학 투자,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투자, 특허 획득 및 신제품 개발에 오랜 기간과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새로운 소재·부품 개발을 위해 필요한 테스트와 인증, 판매로 이어지는 긴 가치사슬 전반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소재·부품 관련 8·5대책에 종합 형식으로 잘 정리돼 있다.

조금 더 보완한다면 세계 시장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을 육성한다는 명확한 시장 친화형 목표 제시가 필요하다. 컨트롤타워가 중요하기 때문에 지난 2009년에 없어진 '소재부품산업진흥원'과 같은 전담 공공기관 부활도 검토할 만하다.

지난번처럼 2001년부터 시작해 10여년 추진하다가 흐지부지된 전철을 다시 반복하면 곤란하다. 백년대계를 수립해서 집행한다는 강한 의지와 일관성, 지속성을 보여 주길 바란다.

김동열 중소기업연구원장 donykim@kos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