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인터넷 실명제, 2006년 첫 시행돼 2012년 폐지..."익명표현.언론 자유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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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폐해는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마찬가지였다. PC통신에서 인터넷 시대로 넘어가면서 각종 게시판에 익명 의견 표출이 활발해지던 시기다. 인터넷 게시판은 새로운 선거 운동 장으로 떠올랐다. 선거 후보자에 대한 익명 비방이 사회 문제가 됐다. 인터넷실명제 도입 논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됐다.

본격 논의는 2003년 3월 시작됐다. 정보통신부가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 실명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던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정부 당국과 시민단체 간 공방이 가열됐다. 진보시민단체는 실명제 도입에 크게 반발했다. 본인 동의 없는 실명 확인을 남용하고 개인정보를 유출한다는 명목으로 정보통신부 등을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정보통신부는 일단 여론을 고려해 실명제 도입을 철회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제한적 실명제가 법제화됐다. 정당·후보자·예비후보자 및 인터넷 언론사가 관리하는 게시판에 실명제가 우선 도입됐다. 선거일 전 120일(대통령 선거는 300일) 기간에 한해 게시판 관리자가 이용자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했다. 여론 반발로 17대 총선에 바로 적용되지는 못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처음 시행됐다. 인터넷언론사들은 불복종 선언을 하고 실명 확인 시스템 설치를 거부했다. 시민단체는 위헌 소송을 진행했다.

2005년에는 이른바 '개똥녀' 사건이 등장하면서 실명제 확대 논의가 고개를 들었다. 개똥녀는 지하철에서 반려견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한 여성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이 여성 얼굴 사진과 신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파장이 커졌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에도 실리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개똥녀 사건 외에도 2005년 '연예인 X파일' 문건 유포, '7악마 사건' 등 온라인에서 인신공격이 이뤄진 사건이 줄을 이었다. 실명제에 대한 네티즌 반감이 약해졌다. 당시 정통부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명제 찬성이 반대 의견보다 최대 4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통부는 다시 실명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다만 완전한 실명제 대신 '실명확인 우대제'로 수위를 낮췄다. 실명확인 우대제는 익명과 실명 게시판을 구분해 실명 게시자에게 접속을 용이하게 하는 제도다.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개똥녀 사건 등은 실명제와 관계없이 사생활 보호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 생긴 문제라는 반박이 제기됐다. 더군다나 해당 사건들은 상당수 이미 실명제가 실시 중인 사이트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800여개 인터넷 언론사를 대상으로 선거법상 실명제가 처음 시행됐다. 104개 인터넷 언론사와 시민사회단체는 실명제 폐지를 주장하며 반발했고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연말에는 포털사이트 이용 등에 실명 확인을 의무화하는 '정보통신망법상 본인확인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실질적인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해당한다.

정보통신망법상 본인확인제도는 이듬해인 2007년 7월부터 시행됐다. 공공기관과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어떤 글도 작성할 수 없게 됐다. 네이버·다음 등 하루 평균 이용자 수 30만 이상의 포털사이트, 오마이뉴스 등 일평균 이용자 20만 이상의 인터넷 신문사 게시판 등 37개 사이트가 실명제 의무화 대상이 됐다. 정부는 2008년 의무 대상 기준을 삭제해 인터넷 게시판 전체로 실명제를 확대하려 했고, 2009년에는 실명제 대상 사이트를 153개로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영상 플랫폼 유튜브는 실명제 적용을 거부했다. 한국 국가 설정 시 업로드 및 댓글 기능을 제한했다. 국가 설정을 다른 나라로 변경하면 기존대로 이용할 수 있어 이용자 제한 보다는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이후 국내 기업과 역차별 이슈로도 번졌다.

2010년 참여연대는 실명제 법안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실명제 적용 대상에 트위터나 페이스북같은 외국계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제외되면서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는 문제도 생겼다. 2011년 싸이월드 회원 3500만명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실명제에 수반되는 주민등록번호 수집 문제도 불거졌다.

결국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실명제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실명제가 익명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고 봤다. 이로 인해 실명제는 도입 5년 만에 폐지됐다.

[이슈분석]인터넷 실명제, 2006년 첫 시행돼 2012년 폐지..."익명표현.언론 자유 침해"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