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R&D는 늘어지고 인건비 부담은 늘고...혁신 의욕마저 꺾일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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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스타트업에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연구개발(R&D)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력 충원으로 만회해야 하지만 인건비 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곳이 많다. 출혈 경쟁을 펼쳐야 하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고정비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게 한다.

국내 대표 유니콘기업으로 꼽히는 야놀자는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189억원 상당 영업손실을 냈다. 같은 기간 마켓컬리 영업적자는 337억원에 달했다. 해마다 적자폭을 늘리고 있다. 꾸준히 투자 유치 성과를 거두며 적자를 상쇄하고 있지만 재무구조가 탄탄하다고 보긴 힘들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서비스하는 온·오프라인 연계(O2O) 스타트업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시스템 전반을 갈아엎는 수준의 강도 높은 변화를 요구받는다. 직원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주 52시간 근무제가 확대될 경우 창업 열기마저 식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새 제도 도입에 앞서 관련 업계와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작을수록 근무 단축 더 어렵다…“회사 자원 인력밖에 없는데”

50인 이하 5인 이상 스타트업은 2021년부터 7월부터 제도 적용 대상이다.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대응이 더 어렵다. 대부분 투자 유치 이전 시점이라 인력을 충원할 자금 여유가 없다. 후발 주자가 자리 잡은 업체와 경쟁이 더 힘들어진다. 스타트업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진다.

한 소규모 스타트업 창업자는 “52시간 이하로 근무시간이 제한되면 사업이 망한다고 봐야한다”며 “초기 스타트업은 미숙련자, 새 업무에 투입된 인원 비중이 크다. 자본이 없는 스타트업은 인력 자원이라도 투입돼야 버티는데, 이를 규제하면 조직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미 지난해 제도가 적용된 300인 이상 스타트업에서도 부서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이다. 개발 조직은 물론이고 소위 '파이팅' 문화가 진한 영업 조직에서도 서류상 근무시간과 실질 근무시간 차이가 크다. 암암리에 자행되는 '공짜야근' 문제가 소규모 스타트업에도 확산될 여지가 있다.

배달 대행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하루 종일 주문이 끊이지 않고 밀려온다. 야간이라고 해서 쉴 수는 없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긴장감이 더 높아진다. 배달 기사 사고율이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배달이 늦다는 불만 전화도 쇄도한다. 일부 배달 대행업체 외엔 주 52시간 도입을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여기고 있다.

업종 특성 상 실험이 많은 의약품 개발 스타트업도 주52시간제 적용이 어렵다. 제품 출시를 하려면 충분한 개발 및 배양 과정이 필요하지만 실험 시간은 변수가 많아 일률적인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주52시간제를 지키고 싶고, 선택적 근로제를 하고 싶어도 근무 시간 예측 자체가 어려운 업종”이라며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 연장이나 제도 시행 유예 기간이 더 길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경쟁력인데”…스타트업 '혼란'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자율적 집중 근무제가 자리 잡았다. 국내 한 유니콘기업 관계자는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근무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며 “가파른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개발업체 관계자도 “근로시간 자체에 큰 의무를 두지 않는다”며 “최단 기간 내 집중적 R&D 활동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역시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출퇴근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며 획일적인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근로자를 '시간 외 수당 근로자'와 '시간 외 수당 면제직원'으로 구분하는 법을 두고 있다. 일반 직원은 주 40시간 근무, 초과 시 1.5배 수당, 초과근무 포함 주 72시간 이상 노동 금지 규정을 적용받는다. 반면 실리콘밸리 임원과 전문직, 세일즈 직군은 노동시간 제약이 없다. 노동시간과 무관하게 연봉과 성과급을 받는다. 개발자는 시간당 43달러, 연간 9만달러(약 1억원) 이상 임금을 받는 숙련자가 해당된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대승적 차원에서 근로시간 줄이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유연한 법 적용도 중요하다”며 “사장부터 사원까지 52시간 근무제를 일괄 적용하기보다, 법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을 어느 정도 직급에서 끊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