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세금이 기업 상속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여의도칼럼]세금이 기업 상속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최근 로펌이나 세무법인에 싱가포르 이민, 싱가포르 법인 이전을 묻는 질문이 많다고 한다. 싱가포르에는 상속세가 없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에도 상속세가 없다. 상속세가 경제 활동을 저해하고 기회 균등도 달성하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상속세를 운영하지 않는 나라가 13개나 된다.

반면에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관련 세금이 존재하는 OECD 국가 평균 26%의 2배에 이른다. 우리보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높은 OECD 국가로는 일본이 유일하다. 그것도 주식할증과세를 감안하지 않았을 때나 그런 것이다. 기업 규모와 지분율에 따라 10~30%가 가산되는 주식할증과세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최고세율은 65%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렇게 높은 상속세가 우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기업의 원활한 상속을 저해하고 있다.

이종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이종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국가 권력이 개인이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가져가는 것은 위헌이라는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있다.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독일에서도 50%가 넘는 고율 과세는 국가나 정부가 할 짓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65%나 되니 누가 기업을 계속하고 싶겠는가. 유니더스, 쓰리세븐, 락앤락 등 건실한 기업이 상속을 포기하고 사모펀드에 주식을 매각하고 있다. 해외 법인 이전이나 해외 투자 확대로 눈을 돌린 기업도 많다.

이렇게 기업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서민과 노동자이다. 그래서 해외 각국은 기업 승계를 위해 각종 세제 혜택을 파격으로 부여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가업상속공제라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요건이 너무 엄격하다 보니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2017년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기업은 전체 대상의 1%에 불과하다. 건수로는 고작 75건이었다. 실효성 없는 제도라는 비판에 등 떠밀려 정부가 사후 조건을 소폭 완화할 계획을 밝혔다지만 공제 대상도 공제 한도도 늘어나지 않아 민간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올해 성장률이 1%대에 머무르고 국민소득 3만달러선이 깨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결국은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어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도 같은 인식 아래 고용을 늘리기 위해 창업 지원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기업을 계속하겠다는 기업의 목소리는 외면하는가. 없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게 훨씬 효율 높은 정책이 아닐까.

그동안 경제단체의 건의 내용을 수렴해 2건의 상속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가업상속공제를 기업상속공제로 변경해 제도 목적이 기업의 원활한 상속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사후 요건을 대폭 완화, 더 많은 기업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또한 수십년 동안의 물가 상승을 감안해 상속세율을 인하했고, 불합리한 주식할증과세는 폐지했다. 이 정도는 돼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0~40년 전에 창업한 창업주들은 이미 은퇴할 나이에 접어들었고, 상속은 당면 과제가 됐다. 상속이 어렵다 보니 사업 확장이나 고용 확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회사를 지킬 수 있는가가 최우선 관심사가 됐다. 그 결과 일감 몰아 주기와 같은 편법이 판을 친다. 이 모든 것의 뒤에는 후진형 상속 세제가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기업인이 상속 문제에만 매달린다니 제대로 된 경제라 할 수 없다. 기업인들이 창의 경영에만 매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이종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자유한국당 의원), jjongkoo@n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