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골목에서 전시를 만나다.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갤러리 ‘아트아치’ / 전시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갤러리 ‘아트아치’ / 전시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 젊음의 거리 홍대 한 편에 자리 잡은 갤러리 ‘아트아치(artarch)’

서울에서 가장 핫(hot)하고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단연 ‘홍대거리’가 아닌가 한다. 주소지 상으로 마포구 서교동 일대를 아우르는 이 거리는 2호선과 경의중앙선, 공항철도가 지나는 홍대입구역과 2호선과 6호선이 지나는 합정역, 6호선 상수역을 기점으로 하여 홍익대학교 앞길까지 형성된 상권을 뜻하기도 한다.

내국인들을 물론 외국인들의 서울 여행 명소로도 손꼽히는 ‘홍대거리’는 젊은 예술인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로 연일 북적이지만 대부분 실외에서 진행되어 겨울철에는 그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이제 막 자신의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한 신진 크리에이터들에게 그들의 솜씨를 뽐낼 수 있는 장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최근 유행하는 ‘플리마켓(flea market)’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마주하고는 하는데 사실 ‘플리마켓’은 직역하면 ‘벼룩시장’이기에 작품들을 전시하고 거래하기에 걸맞은 곳은 아니라고 느껴왔다.

‘홍대거리’에는 갤러리나 전시장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러한 복합문화공간이 많지 않았다. 지도상의 ‘홍대거리’를 살펴보니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을 기념하는 소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소극장의 개수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이고 갤러리나 전시장의 수는 그보다도 적게 나타났다.

그나마도 젊은 예술인들에게는 그 문턱이 높게만 보였다. 대부분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할 뿐 신인 작가들의 작품에 공간을 할애할 깜냥은 없는 듯한 것이 현실이다.

홍대 골목에서 전시를 만나다.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그러한 의미에서 ‘홍대거리’ 한 편에 위치한 갤러리 ‘아트아치’는 젊은 예술인들에게 비교적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전시장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을 통해 신진 크리에이터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까닭이다.

  ◆ 갤러리 ‘아트아치’의 첫 번째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갤러리 ‘아트아치’는 ‘홍대거리’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어울마당로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즐비한 공영주차장 사이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정자와 벤치들이 마련되어 ‘공원’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홍대입구역방향으로 한 블록 안쪽 골목에 위치한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면 쉽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거창한 외관을 가지지는 않았다. 주택을 개조한 건물로 ‘홍대거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카페와도 같은 겉모습을 지녔다. 실제로 1층에서는 카페도 운영한다. 그래서일까? 갤러리 ‘아트아치’는 전시장 입장료나 관람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

1층의 카페에서 원하는 음료를 한잔 주문하면 그것이 바로 입장료를 지불한 것과 같은 셈이 된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념하는 갤러리 ‘아트아치’의 첫 번째 시즌 전시인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도 동일한 기준으로 진행된다.

홍대 골목에서 전시를 만나다.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이번 전시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를 위해 갤러리 ‘아트아치’는 SNS를 이용, 젊은 작가들의 공모를 진행했고 100여 명의 지원자 중 전시 작가 9명과 굿즈(Goods, 상품) 작가 27개 팀을 선발했다.

실내의 한정된 공간을 이용하는 전시인 만큼 지원한 많은 신진 크리에이터들을 모두 수용하기는 어려웠으나 관람객인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선별된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신력을 가진 전시가 되지 않았나 한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전시 및 판매되고 있어 관람객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한 점도 눈에 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이 가능한 굿즈 작품들은 물론 전시 작가의 작품들까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홍대 골목에서 전시를 만나다.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어른들을 위한 취미미술 수강생들의 전시가 열리는 ‘AAA(Art Archive Arelier) 아틀리에’ 관람과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왁스태블릿, 플라워아트, 네온사인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원 데이 클래스’도 준비되어 있어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전시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더했다.

수제 커스텀 케이크로 홍대에서 유명한 케이크 전문점 ‘터틀힙’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나만의 ‘베리 크리스마스 레터링 케이크’를 주문 제작할 수 있다는 점과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품들이 랜덤으로 담겨있는 한정판 ‘베리 럭키 박스(Very Lucky Box)’도 그 구매를 자극한다.

  ◆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전시 작가 인터뷰

100여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운 좋게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게 된 작가들이 궁금했다. 전시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작가들은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로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기도 했다. 보통은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의 연령대가 삼십 대 중반만 되어도 젊은 작가라고 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일 테다. 그중에서도 대학생 느낌이 물씬 나는 세 명의 여성 전시 작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의도치 않게 작가 세 명 모두가 해외에서 유학이나 취업활동을 했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래는 거주했던 지역이 모두 달랐던 전시 작가 세 명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영국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던 ‘봄나’ 작가

홍대 골목에서 전시를 만나다.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혼란스러운 사회적 이슈나 변화들에 대해 본인이 느끼는 감정들을 한국적인 이미지에 녹여내는 작품들을 그리고 있다는 ‘봄나’ 작가는 우리의 정서가 담긴 옛 그림 ‘민화’의 색감과 콘셉트를 참고하고 있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미술을 전공했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 찾았던 영국에서 스타트업 회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봄나’ 작가는 자유롭고 위계질서가 없는 근무 환경과 다른 직원들과 친구처럼 일할 수 있는 분위기는 좋았지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은 그릴 수 없다는 사실에 한국으로 돌아와 본인이 가졌던 본래의 꿈을 좇는 중이다.

한국적인 색감이 크리스마스라는 외국 기념일과 절묘하게 어울리고 여성 작가의 섬세함이 물씬 느껴지는 작가 ‘봄나’의 작품 속에는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이 온전히 담겨 있다고 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자신을 가꾸어야 하는 것을 꽃을 키우는 것에 비유해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그녀는 여성의 시각과 입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이 다시 찾은 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이 느껴지는 작가였다.

 - 밀라노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던 ‘OLOHOYO(올로호요)’ 작가

홍대 골목에서 전시를 만나다.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그리게 된다던 작가 ‘OLOHOYO(올로호요)’는 작가명부터 범상치 않다. 일곱 글자의 영문 맨 앞 세 글자 ‘OLO’, 가운데 세 글자 ‘OHO’, 맨 뒤 세 글자 ‘OYO’를 각각 떨어뜨려 놓고 보면 모두 사람의 얼굴 모양이 된다는 그녀의 작가명은 학창시절부터 생각해왔던 이름이라고 했다.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던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과 같이 평면적인 작품이 아닌 몸으로 표현 가능한 작품들을 만들고 싶었던 ‘OLOHOYO(올로호요)’ 작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밀라노의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패션디자인을 먼저 공부해야 본인이 만들고 싶은 작품들에 접목을 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는 그녀는 이번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전시에 쿠션과 이불, 패브릭으로 구현된 스케이트보드 등을 전시 중이다. 누구나의 집에 있을 법한 생활소품들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OLOHOYO(올로호요)’ 작가의 창의력이 돋보였다.

 -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했던 ‘정인’ 작가

홍대 골목에서 전시를 만나다.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편입을 통해 뉴욕 소재의 대학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정인’ 작가는 현재 ‘도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라고 했다.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전시에는 대학 재학 중 1년짜리 장기 프로젝트의 주제로 삼았던 ‘7가지 죄악’의 그림들 중 탐욕, 색욕, 나태, 질투의 네 가지 작품과 영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Last Year at Marienbad)'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설화나 전설을 기본으로 하는 작품들을 그려왔다는 ‘정인’ 작가는 한국의 ‘이무기 이야기’, ‘뱀 이야기’ 등을 시리즈로 진행했었고 ‘7가지 죄악’을 주제로 하는 그림들은 그 콘셉트를 확장하여 모던하게 풀어 그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어울리는 색감을 가진 것들이라고도 했다.

특히나 영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Last Year at Marienbad)'는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군중 속의 고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흑백영화를 모티브로 한 그림을 출품한 것에 대해 친절히 부연 설명을 해주기도 하였다. ‘알폰스 무하’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작품들에 ‘무하’의 작가적 기품이 오버랩 되는 듯하였다.

  ◆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전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일반 대중들에게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과 예술이라는 장르를 생활소품, 아틀리에, 원 데이 클래스 등으로 친숙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는 매우 긍정적이다.

음료를 구매함에 따라 준비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한다는 형식도 신선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빠질 수 없는 기념 레터링 케이크도 다른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콘텐츠이자 상품이기에 매력적이다.

‘플리마켓’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으로의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젊은 예술인들에게 대놓고 저렴하거나 중고인 물건들을 거래하는 ‘벼룩시장’의 구석자리는 그다지 어울리는 공간이 아니었다 생각하기에 갤러리 ‘아트아치’의 이번 전시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가 반가울 따름이다.

홍대 골목에서 전시를 만나다.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12일부터 시작된 ‘베리 크리스마스 (VERY CHRISTMAS) 2019' 전시는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까지 갤러리 ‘아트아치’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오픈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평일 저녁 퇴근 이후의 관람객도 배려했다고 한다.

이 글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전시 작가들의 작품들과 굿즈 작가들의 러블리한 상품들을 따뜻한 실내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 직접 눈으로 감상하는 것도 좋겠다. 마음에 드는 작품과 상품은 구매하여 개인 소장도 가능하니 서둘러 방문할 필요성도 있을 듯하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를 쉽게 느끼기 힘든 요즈음 한해 동안 고생한 나에게 베리(very) 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해 줄 겸 전시를 관람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것이 손에 잡히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말이다.

 전자신문 컬처B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