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윈드토커···나바호어와 양자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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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인 미디어]윈드토커···나바호어와 양자암호

미국 남서부에 '나바호족' 거주지역이 있다. 애리조나주와 뉴멕시코주에 걸쳐 있는 지역에 약 30만명 나바호(Navajo)족이 산다. 1800년대 말 유럽 이주자와 전쟁에서 패하며 좁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갇혔고, 세월이 흐르며 잊혔다.

나바호족을 역사 무대로 다시 불러낸 건 2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은 태평양에서 일본과 전쟁에서 암호를 해독당하며 수세에 몰렸다.

당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전역자가 나바호어를 암호통신에 이용하자고 제안했다. 나바호족 거주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그는 나바호어가 매우 어려운 언어임을 알았다. 그의 제안에 따라 나바호족 암호통신병이 '코드토커'란 암호명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윈드토커(Windtalkers)는 나바호족 활약을 담은 영화다. 미군은 나바호족 자원자를 훈련시켜 사이판 전쟁에 투입한다. 주연 니콜라스 케이지는 나바호족 암호통신병을 보호함과 동시에 위급상황에서는 이들을 죽여서라도 암호를 지키는 비정한 임무를 맡는다.

작전은 적중했다. 나바호어는 과연 너무 어려워 일본군은 해독에 실패하고 전쟁에서도 패한다. 나바호족 코드토커 활약이 워낙 커 이후 한국전과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군사기밀로 묶이는 통에 이들 활약은 1969년에야 세상에 알려졌고, 미 정부는 1982년 이들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비슷한 시기 독일군도 암호전에서 밀리며 전쟁에 패한 것을 보면 암호 중요성을 실감한다. 암호장치 '에니그마'가 잠수함에서 극적으로 연합군 손에 들어가 독일이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따지고 보면 현대사회는 매일 전쟁이다. '암호 전쟁' 말이다. 정부 비밀문서는 물론이고 군사기밀, 금융 정보, 개인정보를 모두 암호로 처리한다. 암호가 풀리면 어떤 경우라도 큰 피해가 발생한다. 어쩌면 폭탄이 터지는 전쟁보다 피해가 클지도 모른다. 누군가 암호를 푸는 열쇠를 갖는다면 그는 이 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나바호어'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 어려워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언어야말로 모든 암호전문가가 찾는 꿈의 암호체계일 것이다.

사실 나바호어를 찾는 게임은 시작됐다. '양자컴퓨터'라는 골치 아픈 해독자가 등장하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정부와 기업, 군, 금융사는 태평양에서 번번이 일본군에 패배했던 미군 신세를 면키 어려울지 모른다. 재밌는 점은 제2 나바호어로 '양자암호'가 기대를 모은다는 점이다. 일본군은 나바호어로 된 암호를 들어볼 수 있었겠지만 양자암호는 아예 들여다볼 수조차 없다는 점에서 한층 진화한 나바호어라 할 수 있겠다.

2020년이 코앞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할 것만 같은 해다. 실제로 꿈에 상상하던 기술이 현실에 나타나고 암호 전쟁도 가속화할 것이다. 제2 나바호어 찾기에서 우리가 앞서나가는 상상을 해본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