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명예회장, 대기업 첫 '무고(無故) 승계'…구·허 양가 동업도 아름다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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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 명예회장(왼쪽)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고 있다.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 명예회장(왼쪽)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고 있다.>

고 구자경 명예회장은 국내 대기업 사상 첫 '무고(無故) 승계'를 단행하고, 구씨와 허씨의 동업도 잡음없이 마무리하는 등 경영에서도 모범을 보였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2월, LG와 고락을 함께 한 지 45년, 회장으로서 25년 세월을 뒤로 하고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국내 최초 대기업 '무고 승계'로, 당시 재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아직 은퇴를 거론할 나이가 아닌 시기에 그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경영혁신 일환으로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결심한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등 본격적인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글로벌화를 이끌고 미래 유망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사람들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퇴임에 앞서 사장단에게 “그간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충실히 해 왔고 그것으로 나의 소임을 다했으며, 이제부터는 젊은 세대가 그룹을 맡아서 이끌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퇴임 의사를 표명했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에서 물러날 때 창업 때부터 그룹 발전에 공헌을 해 온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남정유에너지 회장 등 창업세대 원로 회장단도 젊은 경영인들이 소신 있게 경영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동반퇴진'을 단행했고, 이러한 모습은 당시 재계에 큰 귀감이 되었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를 결심하면서 '멋진' 은퇴보다는 '잘 된' 은퇴가 되기를 기대했다. 육상 계주에서 앞선 주자가 최선을 다해 달린 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배턴 터치가 이루어졌을 때 '잘 됐다'는 표현이 어울리듯, 경영 승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던 것이다.

구 명예회장에게 은퇴는 그가 추진해 온 경영혁신 일환이었고, 본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혁신 활동이었다.

그는 훗날 회고에서 “은퇴에 대한 결심은 이미 1987년 경영혁신을 주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차기 회장에게 인계한다는 것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 나름의 밑그림이었다. 그래서 내 필생의 업으로 경영혁신을 생각하게 되었고, 혁신의 대미로서 나의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구 명예회장 퇴임 후 2000년대 들어 3대 57년간 이어온 구·허 양가의 동업도 '아름다운 이별'로 마무리했다.

57년간 사소한 불협화음 하나 없이 일궈온 구씨, 허씨 양가의 동업관계는 재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사업매각이나 합작, 국내 대기업 최초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모든 위기 극복과 그룹 차원의 주요 경영 사안은 양가 합의를 통해 잡음 없이 이뤄졌다.

양가는 기업의 57년 관계를 아름답게 매듭짓는 LG와 GS그룹의 계열분리 과정 또한 합리적이고 순조롭게 진행했다. 구 명예회장 직계가족은 전자, 화학, 통신 및 서비스 부문 맡아 LG그룹으로 남기기로 했고, 허씨 집안은 GS그룹을 설립해 정유와 유통, 홈쇼핑, 건설 분야를 맡기로 했다. 또 전선과 산전, 동제련 등을 묶어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창업고문이 LS그룹을 공동 경영하기로 했다.

순탄하게 계열 분리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창업회장의 뜻을 받들어 구 명예회장이 합리적인 원칙에 바탕을 둔 인화의 경영을 철저히 지켰고, 상호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사업을 이끌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