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과 함께 하는 미술과 음악의 컬래버레이션

전시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 추상미술의 아버지 ‘바실리 칸딘스키’를 2020년식으로 해석하다

186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이하 칸딘스키)’는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법학자로서의 자리매김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1895년 한 미술 전시회에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는 무척 유명한 일화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그림 공부를 시작한 칸딘스키는 처음 화려한 색채의 풍경화나 러시아 민속화에서 영감을 얻은 주제들이 담긴 그림들을 그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체적인 대상의 묘사에서 벗어나 형태와 색채와 선으로 표현의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음악과 철학이 어우러진 근대미술과 추상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19년 독일의 바이마르에 설립된 ‘바우하우스’의 교수로도 재직했던 칸딘스키는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로서 형태와 색채가 사물의 겉모습을 그려내기보다 작가의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월 10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전시는 100여 년 전 칸딘스키의 작품과 정신을 회고하며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미디어 아트라는 장르로 해석된 다양한 결과물들을 선보인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과 2관을 아우르며 1관에서는 ‘칸딘스키’와 그의 작품들을 주제로 하는 ‘뉴미디어아트’를 관람할 수 있고 2관에서는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대중음악을 그리는 현대작가들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이 전시는 오는 3월 9일까지 설날 당일에도 쉬지 않고 휴무일 없이 운영된다고 한다.

 ◆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한 ‘칸딘스키’의 일대기와 그의 정신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로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커다란 화면을 통해 보이는 3D 영상이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 2악장의 음악과 함께 ‘칸딘스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미디어 아트를 감상하면서 음악이 미술보다 상위의 예술이라 여겼던 그의 예술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두 번째 섹션은 ‘칸딘스키’의 삶을 연도별로 분류하여 한눈에 볼 수 있게 해두었다. 풍경화를 그리던 ‘칸딘스키’가 어떻게 추상회화의 아버지가 되는가를 보여주는 해당 섹션은 중심부에 설치된 키네틱아트가 인상적이다.

전시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아틀리에에서 우연히 뒤집힙 작품을 보고 추상화의 의미에 대한 정립을 하게 된 칸딘스키가 이후 아방가르드 모임인 ‘청기사파’를 결성하고 표현주의와 추상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중요한 사건을 두 개의 키네틱아트로 승화시켰다. 1차 세계대전을 지나 바우하우스의 수업론을 가지고 쓴 책도 전시하고 있어 시대적인 사조를 가시화하는 칸딘스키 아카이브로서의 가치를 지닌 섹션이다.

러시아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Mussorgsky, Modest)’의 피아노곡 무대를 디자인하면서 ‘칸딘스키’가 남겼던 ‘에스키스(esquisse, 설계도)’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김소장 실험실’의 ‘무대2020’이 세 번째 섹션으로 준비되어 있는데 관람객의 움직임과 위치에 따라 소리와 빛이 변화하는 것이 구현된 인터랙티브한 공간이다.

세 가지 섹션을 지나는 통로에는 ‘칸딘스키’ 추상작품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해 두기도 하였다. 추상의 시작 무렵에는 뭉뚱그려진 듯한 느낌이었던 작품들이 바우하우스 재직 당시의 기하학적인 작품으로 진화하고 음악적 영감과 결합된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노년 시절의 그림들이 디지털 프린팅으로 재현되어 있다.

전시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이후 섹션은 공간 하나가 온전히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오순미 작가의 ‘봉인된 시간_과거(Sealed Eternity_Past)’였다. 칸딘스키 작품의 색감을 가진 조명을 이용하여 전면이 비추이는 재질로 만들어진 이 공간 안에 관람객이 들어가 체험을 할 수 있다.

하나하나의 선이 각자가 살아온 시간들을 상징하는 것에 비유된 공간 속에서 끝없이 생성되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낯설게 느껴지는 반사하여 비치는 본인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설치미술 작품이다.

 ◆ 대형 미디어 룸과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들

1관의 말미에 마련된 폭 12M, 천장 높이 6.6M의 대형 미디어 룸에서는 칸딘스키와 무용, 현악의 중첩이 이루어진 미디어 아트 작품 ‘칸딘스키의 정신’이 상영된다. 독일의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의 현악사중주 2번을 콘서트를 통해 접한 칸딘스키가 그려낸 ‘인상3-콘서트’라는 작품을 음악과 무용의 접목으로 재 탄생시킨 영상이다.

전시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앞서 소개한 ‘바그너’의 ‘로엔그린’역시도 현악사중주로 표현되었으며 우리에게 친근한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의 연주도 영상화되어 그의 실루엣을 볼 수 있다. 지하층에 위치한 2관으로의 이동 또한 미디어 룸의 영상물에서 이어지는 듯한 흐름으로 진행된다. 널따란 휴게공간과 이동공간이 합쳐져 관람객들의 휴식을 가능하게 한다.

2관에서 처음 접하게 되는 작품은 작가 ‘정상윤’이 그린 ‘칸딘스키’와 관련된 인물들의 초상화들이다.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정상윤’의 작품은 드로잉 기반의 작업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속도와 명암, 명도와 채도, 묘사 등의 다양성을 가지며 점과 선과 면과 색채에 대한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92년생 잔나비(원숭이)띠 멤버 4인조로 구성된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두 번째 정규앨범 ‘전설’의 커버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는 ‘콰야’ 작가의 작품들도 있다. 2016년부터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한 작가 ‘콰야’는 전공이었던 의상 디자인을 살려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일상적이지 않은 색감으로 표현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전시에서는 그의 여러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난 6월 지난 10년여의 작업물을 가지고 단독 전시를 열었던 ‘장준오’, ‘어지혜’ 작가로 구성된 아트웍 작업팀인 ‘스팍스에디션’의 전시공간도 넓게 자리를 하고 있다. ‘아메리카노’로 유명세를 얻은 가수 ‘십센치’의 2011년 정규앨범 커버 디자인으로도 잘 알려진 ‘스팍스에디션’의 여러 음반 디자인 작품들이 전시장 한편을 가득 메운다.

스팍스에디션 섹션의 중심에는 ‘댄싱블루’라는 타이틀의 키네틱아트도 설치되어 눈길을 끈다. 푸른색의 염료가 돋보이는 ‘Paticle(파티클)’ 작품들도 배치되어 있고 조각들을 자유롭게 놓아두는 방식으로 협업한 ‘Layer(레이어)’라는 이름의 작품들도 만나 볼 수 있다. 그래픽과 조형예술뿐 아니라 ‘십센치’를 비롯한 ‘장범준’, ‘로꼬’, ‘한희정’ 등등의 대중 가수들의 앨범을 브랜딩 하는 작업을 한다는 면에서 가장 이번 전시의 의미에 부합하는 팀이 아니었나 싶다.

전시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전시장의 가장 마지막에는 가로 6m, 세로 15m의 또 다른 미디어 아트관이 마련되어 칸딘스키의 점, 선, 면, 색체를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빛의 멜로디’를 관람할 수 있다. 미디어 파사드 제작사인 ‘모션플랜’과의 합작품으로 깊고 끝없는 어둠이 펼쳐진 터널 속과 같은 공간에서 관람객으로 하여금 ‘칸딘스키’의 작품을 뉴미디어 아트를 통해 재조명하게 한다.

미디어 파사드와 어울리는 공명이 느껴지는 음악이 함께하고 후반부에는 ‘유진 박’이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듣고 즉흥적으로 연주한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덧대어져 공간을 채운다.

 ◆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전시가 가지는 가치

위에 소개한 여러 가지의 섹션들 외에도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또한 준비되어 홈페이지 사전예약을 통해 수업이 진행된다. ‘오감으로 느끼는 칸딘스키’라는 주제를 가진 이 교육 프로그램은 전시장 내에서 접한 ‘칸딘스키’의 작품을 아이들 스스로 곱씹어 보며 음악과 미술의 조화를 이해하고 뉴미디어 기기를 통해 전달되는 많은 매체들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전시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한 쪽에는 ‘LG 유플러스’와 세종미술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없는 갤러리’가 오픈되어 있기도 하다. 예술에 ‘5G’ 기술을 더한 살아 움직이는 360도 전 방향 관람이 가능한 작품들도 전시가 되어 있어 인공지능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이 결합된 동서양 명화의 만남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를 통해 대중들에게 추상미술의 대가인 ‘칸딘스키’가 표현하고자 했던 시각의 멜로디를 확장한 공감각적인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했다는 전시 주관사 ‘GECC(글로벌교육콘텐츠)’는 한 세기 이전의 것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어 2020년에 걸맞은 교육적 가치를 지닌 전시로 탈바꿈시켰다. 큐피커라는 오디오가이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도슨트 김찬용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는 매력까지 장착했다.

“색채는 건반, 눈은 공이,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이다.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이다”라고 말했던 칸딘스키의 비유처럼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전시를 통해 미술과 음악의 겉모습보다는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의미와 감정에 대해 한 번 더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가져본다면 좋을 것이다.

이제 막 시작된 전시이기에 남은 기간 동안 방문하여 칸딘스키라는 시대의 인물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 놓은 다채로운 섹션들을 둘러보고 급변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놓치고 있는 본질에 대해 반추해 보는 연습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칸딘스키 미디어아트 & 음악을 그리는 사람들’ 전시의 관람이 과거와 현재, 음악과 미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드는 ‘칸딘스키’가 가지는 교육적 가치에 대해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신문 컬처B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