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국가R&D, '고위험 혁신연구'에 과감히 도전해야

[ET단상]국가R&D, '고위험 혁신연구'에 과감히 도전해야

인터넷의 모체가 된 알파넷(ARPANet),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애플의 음성인식기술(Siri), 무인자동차와 스텔스기 등은 세상을 바꾼 파괴 혁신 대표 성과들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 국방 연구개발(R&D) 조직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통해 창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전문가는 DARPA의 성공 요인으로 실패할 우려가 크지만 성공하면 엄청난 파급 효과가 기대되는 '고위험 혁신 연구'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꼽는다.

올해 정부 R&D 예산은 24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대폭 상승했다. 30조원 시대도 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R&D 예산 증가가 과학기술계를 고무시킨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인 데 비해 성과가 다소 부족하다는 회의 시각도 있다.

특히 1990년대 정부가 G7 프로젝트를 통해 반도체 등을 주력 산업으로 키운 데 반해 이후에는 R&D를 통한 신산업 창출에의 가시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사실이다. 이제 과거의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어'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유이다.

더욱이 최근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 미-중 무역 갈등과 같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급속하게 악화된 대외 여건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안정성과 성공률 높은 추격형 R&D에서 벗어나 '고위험 혁신 연구'에 과감히 도전하는 국가 R&D의 전면에 걸친 패러다임 혁신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국가 R&D 사업 가운데 '고위험 혁신연구'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범부처 국가 R&D를 총괄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는 '혁신도전프로젝트'를 통해 고난도지만 성공하면 경제·사회 파급 효과가 큰 새로운 연구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방위사업청은 미래도전기술개발 사업을 시작했고,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과학 난제에 도전하는 융합R&D 사업을 새롭게 추진한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개의 개별 사업에서 더 나아가 국가 R&D 전반에 걸쳐 '고위험 혁신연구'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으려면 제도의 근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첫째 정부 R&D 예산의 일정 비율을 '고위험 혁신연구'에 신규로 적극 투자하는 것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혁신 방안으로 '고위험 혁신형 기초연구' 투자 확대를 촉구해 왔다. 미국 국가경쟁력위원회는 2004년 위원장의 이름을 딴 일명 '팔미사노' 보고서에서 연방정부 R&D 예산의 3%를 '고위험 탐색 연구'에 신규로 배분할 것을 제안했으며, 국립과학원은 2005년 어거스틴 보고서에서 최소 8%를 재량 경비로 배분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둘째 '고위험 혁신연구'를 통해 혁신 성과 창출을 옳게 이끌 수 있는 국가 R&D 과제 선정·평가·관리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미국 DARPA처럼 과제 선정 방식을 챌린지형·프라이즈형 등으로 다양화하고, 연구자가 연구를 성실하게 하다가 실패했을 경우 이를 용인하는 성실실패 인정 범위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전 및 창의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한 국가 R&D 혁신의 방향성, 철학과 종합 기준 등을 담은 범부처 공통 규범인 '국가연구개발 혁신을 위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이 필수다.

셋째 '고위험 혁신연구' 투자 확대뿐만 아니라 잠재성 강한 연구 성과의 초기 시장을 마련해 성장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혁신 중개전략'도 긴요하다. 즉 '고위험 혁신연구'에 대한 연구비 지원에서 더 나아가 연구 성과의 확산과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혁신 지향 공공 조달, 실증 및 상용화 R&D 확대 등을 병행하는 종합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고위험 혁신연구'는 혁신 성과가 나오기까지 충분한 축적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긴 호흡의 지속 투자가 중요하다. 이제는 '고위험 혁신연구'를 강화하는 미래 지향형 국가 R&D 패러다임 혁신을 통해 국민이 더욱 체감할 수 있는 혁신 성과 창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다.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 bhson@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