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정책포럼]<82>R&D 24조 시대, 기술 사업화로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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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우리나라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증가율은 1990년대에 20%대를 상회했다. 이처럼 집중 투자가 가능하게 된 것은 대학과 연구소의 R&D 성과가 기업으로 흘러들어 가서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기업도 성장하고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정부 R&D에 기대하는 '선순환의 낙수효과'다.

그러나 이 낙수효과는 2000년대 들어와 12.8% 수준으로 하락한 데 이어 2010년대에는 한 자릿수인 4.6%로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동안 R&D 결과가 민간에 이전돼 기업 혁신과 매출 및 고용으로 이어지는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R&D의 선순환 효과에 대한 믿음이 예전만 못한 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R&D로 선순환의 낙수효과를 거두려면, 다시 말해서 기술 개발 성과가 기업과 산업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R&D의 마지막 연결고리라 할 수 있는 사업화가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 기술 사업화는 R&D를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라는 점에 누구나 동의하면서도 막상 사업화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밑천 삼을 기술이 없어서, 긴 사업화 과정을 버틸 자금이 부족해서, 필요한 기술을 찾아보고 가져올 전문 인력이 없어서, 판로 개척이 어려워서, 규제에 막혀서 좌절하기도 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기업들이 사업화 추진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줌으로써 기술이전·사업화 생태계를 건강하게 육성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올해도 기술 개발과 혁신 간극을 메우고 이 둘을 연결하는 허리 역할에 매진하고자 노력한다.

우선 R&D에 드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이미 개발된 기존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공공 기술을 이전받아 사업화에 나서는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할 것이다. 대기업이 무료로 개방하는 미활용 기술을 원하는 중소·중견기업에 나눠 주는 기술나눔 제도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인공지능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미래 신산업 육성을 위해 관련 기업에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는 펀드도 조성한다. 민간 투자 유치를 연계시켜 사업화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사업도 진행하는 한편 이른바 '빅3'로 부르는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분야에 진출하려는 창업 기업 대상으로 멘토링을 포함한 집중 지원도 준비하고 있다.

사업화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이 양성되고, 적극 활동할 수 있는 토양도 마련돼야 한다. 기술 이전 노하우가 있는 기술거래사 대상으로 교육을 확대하고, 기술경영 전문대학원을 지원해 역량 강화를 꾀할 방침이다. 또 20만건 이상 공공 기술 정보를 모아 둔 국가기술은행 데이터베이스(DB)를 고도화하고 품질 관리를 추진할 계획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조달 시장에서도 사업화 영역으로 집중 지원한다. 공공 분야 수요를 발굴해 제품을 개발하게 하고, 개발된 제품은 조달 시장 진출까지 연계시켜서 판로 개척을 지원하고자 한다. 사업화 과정에서 마주치는 규제 애로도 조사하여 규제 샌드박스로의 해결을 추진한다.

올해 정부R&D 예산은 24조원에 이른다.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 제한 조치 대응, 미래 성장 동력 확충을 통한 혁신 성장 가속화를 위해 최근 듣기 드물게 전년 대비 17.5% 증액된 규모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이 같은 외형 성장에 발맞춰 마지막 R&D, 기술 사업화에 더욱 힘쓸 계획이다.

우수한 제구력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마무리 투수를 '끝판왕'이라고 부르듯이 올 한 해 내실 성장의 최종 모습인 기술 사업화에 전력투구해서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바로 'R&D의 끝판왕'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ycseok@kia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