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민관 조사단, ESS 화재 원인 '배터리' 지목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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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배터리 산업 먹구름 확산

[이슈분석] 민관 조사단, ESS 화재 원인 '배터리' 지목 파장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배터리 제조사별 화재사고 발생 건수ESS 유형별 화재사고 발생 건수ESS 화재 사고 조사단 구성 현황

# 작년 8월 이후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사고 원인이 '배터리 이상'으로 지목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민관 전문가로 구성된 'ESS 화재사고 조사단'은 광범위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내린 결과라고 강조했지만, ESS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과 삼성SDI는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ESS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가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지만 갈등은 수습되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는 양상이다.

◇조사단 “사고 5건 중 4곳, 배터리에서 발화”

조사단이 내린 결론은 배터리 문제였다. 작년 8월 이후 ESS 화재는 충남예산, 강원평창, 경북군위, 경남하동, 경남김해 총 5건이다. 조사단은 이 중 4건이 배터리 이상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6일 발표했다.

조사단이 밝힌 핵심 근거는 배터리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ESS 운영기록을 분석한 결과 충남예산, 강원평창, 경북군위, 경남김해의 경우 배터리가 발화지점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충남예산과 경북군위의 경우 배터리에서 내부발화 시 나타나는 용융흔적을 확인했고, 강원평창은 범위를 넘는 충·방전 현상과 배터리 보호기능이 동작하지 않은 점, 경남김해에서는 배터리들 간에 전압편차가 커지는 경향 등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발화지점 배터리가 소실돼 원인분석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종합적인 조사와 분석을 근거로 도출한 결과”라며 “충남예산, 강원평창, 경북군위, 경남김해는 배터리 이상을 화재원인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나머지 경남하동은 이물질이 외부 노출된 충전부에 접촉해 화자 화재가 발생된 것으로 추정했다.

◇“납득할 수 없다” 배터리 제조사 즉각 반발

조사단은 학계와 연구기관, 국회, 소방청 등 전문가 20명을 꾸려 철저한 분석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배터리 업체들은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원인 분석이 잘 못됐다는 게 요지다. 특히 조사단이 근거로 지목한 '발화지점'을 놓고 충돌했다.

삼성SDI는 이날 내놓은 입장문에서 “ESS 화재 발화지점은 배터리에서 시작되더라도 화재 원인은 다양하다”고 강조했다.

화재는 불을 붙일 수 있는 '점화원(열)', 불을 지속시키는 '산소', 불을 확산시키는 '가연물(연료)'이 동시에 존재해야 발생하는데, 배터리가 화재를 확산시킬 원료는 되도 점화원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즉 휘발유도 성냥불 같은 점화원이 있어야 불이 붙는 것이지 ESS의 배터리 자체가 화재의 원인이라는 건 잘못된 분석이란 것이다.

LG화학도 배터리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LG화학은 그 이유로 지난 4개월간 실제 사이트를 운영하며 가혹한 환경에서 실시한 자체 실증실험에서 화재가 재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또 조사단에서 발견한 양극 파편, 리튬 석출물, 음극 활물질 돌기, 용융 흔적 등은 일반적인 현상 또는 실험을 통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혼란 확산' 구상권 청구 등 진통 계속될 듯

이번 ESS 조사는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두 번째 조사다. 정부는 지난해 6월 23건의 ESS 화재에 대한 1차 조사 결과 및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책 발표 이후에도 화재 사고가 이어지자 10월 2차 조사단이 꾸려졌다.

문제는 두 번에 걸친 조사에서도 뚜렷한 결론이 도출되기보다 혼란이 가중된다는 데 있다. 1차 조사단은 배터리보호시스템 미흡 등 네 가지 요인을 지목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배터리가 원인으로 등장했다. 화재 사고는 같은 데 서로 다른 원인이 나온 것이다. 화재가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변수로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1차와 2차 조사 결과에서 공통된 특징은 발견되지 않고 새로운 원인들이 계속해서 지목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2차 조사단이 배터리를 화재의 원인으로 몰고 가려 한다는 불만이 제기됐었다. ESS는 배터리 외에도 전력변환장치(PCS), 운영시스템(EMS),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종합적인 시스템으로 구성되는데 다른 분야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같은 배터리를 납품하는데 해외 ESS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점도 풀리지 않는 대목이다. 배터리가 문제였으면 해외에서도 화재가 났어야 하는데 유독 국내에서만 사고가 발생했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제2의 반도체'로 꼽히는 국내 배터리 산업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지난해 4분기 첫 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ESS 화재와 관련한 충당금 3000억원을 설정, 비용으로 반영해서다. 삼성SDI는 ESS용 배터리 안전성 강화 조치를 위해 2000억원을 4분기 비용으로 반영했다.

이런 실적 악화뿐 아니라 손해배상 문제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삼성화재는 LG화학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는 화재가 발생하면 보험 가입자에 보상액을 지급한 뒤 화재 원인을 파악해 원인 제공자에 구상권을 청구한다. 소송 대상이 됐던 화재 사고는 1차 조사에서 LG화학 배터리가 원인으로 지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2차 조사에서는 배터리가 원인으로 거론된 만큼 보험사와 배터리 업체 간 소송이 불붙을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 회사가 소송에서 자칫 패소하면 유사 사례에 대한 막대한 손해배상이 불가피하다”며 “치열한 법적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ESS 화재 사태에 발목 잡힌 사이 CATL 등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은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어 국내 배터리 업계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