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디지털' 논란...무늬만 IT금융혁신 프로젝트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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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디지털 무늬만 혁신금융
금융사들이 디지털 혁신금융을 위해 공중전화 부스에 ATM기기를 설치하는 등 정부 정책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지적이 있다. 6일 서울 시내의 IBK기업은행 365 코너를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립스틱 디지털 무늬만 혁신금융 금융사들이 디지털 혁신금융을 위해 공중전화 부스에 ATM기기를 설치하는 등 정부 정책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지적이 있다. 6일 서울 시내의 IBK기업은행 365 코너를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메이저 은행권이 추진한 혁신금융 서비스가 속속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의 금융 핀테크 활성화 정책에 맞춰 혁신 사업을 경쟁적으로 내놓았지만 소비자와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이른바 무늬만 혁신이라는 뜻의 '립스틱 디지털 사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9일 금융·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정부의 혁신금융 기조에 편승해 내놓은 디지털 전환 서비스가 반쪽 사업에 그치고 있다. 제대로 된 시장 분석 없이 '혁신'이라는 이미지만 내걸었다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우리은행이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받아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드라이브 스루 환전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는 고객이 모바일로 별도 신청, 자동차로 드라이브 스루 환전소를 방문하면 차량번호 인식, QR코드, 생체인식을 통해 차 안에서 환전이 가능한 '금융+유통' 사업 모델이다.

지난해 5월 금융위원회로부터 규제 샌드박스로 선정돼 향후 2년 동안 우리은행에서 운영이 가능한 서비스다. 그러나 이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무기한 연기됐다. 환전 서비스에 필요한 여러 보안 체계와 인프라, 현금수송 문제 등에 대해 이견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우리은행은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드라이브 스루 환전 서비스를 공항 근처나 유입 인구가 많은 곳에 설치하기 위해 물밑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은행 본점 지하주차장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은행 내부에서조차 이 사업은 시장 분석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 반쪽 혁신 사업이라는 여론이 제기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인이 차로 은행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환전 받는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제대로 된 시장 분석 없이 디지털 혁신이라는 이미지만 갖다 붙인 졸속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IBK기업은행이 국내 최초로 추진한 공중전화 현금자동인출기(ATM) 사업도 사실상 방치 상태에 놓여 있다. 수천억원의 손실만 떠안고, 이용자가 없다. 기자가 서울시내 IBK기업은행의 24시간 길거리 무인점포를 직접 찾았다. 2011년 공중전화 부스를 길거리 ATM 부스로 개조한 시도였다. 활용도가 저조한 공중전화 부스를 재활용했다. 취지는 좋았다. 도심 전역에 있는 공중전화 인프라로 곳곳에 기업은행 접점을 마련했다.

9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혁신 결과물은 초라해졌다. 길거리 무인점포는 사실상 '내놓은 자식'이 됐다. 길거리 무인점포는 흥행 실패 후 상당수가 사라졌다. 거리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기업은행 인터넷 홈페이지에 안내된 위치와 실제 무인점포 위치가 상이하거나 위치 설명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전자신문은 서울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일대 세 곳, 서울지하철 4호선 회현역 인근 한 곳을 방문했다. 이 가운데 실제 길거리 무인점포가 있는 건 한 곳에 불과했다. 영등포역과 영등포 LG빌리지상가로 안내된 무인점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회현역 인근 남대문시장 상황도 같았다. 상인들에게 물었지만 인근에는 ATM이 없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고객에게도 외면 받고 있었다. 일부 점포는 고객센터에서 “현재 운영하지 않는다”고 안내했다. 실제 고객이었다면 ATM을 찾아 헤매다 시간만 버린 셈이다.

그나마 찾기 쉬운 곳은 서울지하철 1·5호선 신길역 인근 길거리 점포였다. 해당 점포도 관리 상태는 좋지 못했다. 출금 전표 다수가 바닥에 버려져 있었고, 이용자는 몇 시간째 없었다.

당시 이 사업은 은행장의 치적 사업이라는 의문도 제기됐다. 통신사 한 곳과 독점 제휴를 맺어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대됐다. 지금은 있으나마나한 계륵성 인프라가 됐다.

은행권 공동 블록체인 인증 사업 '뱅크사인'도 투자비만 수십억원을 날린 '립스틱 디지털 사업'으로 거론된다. 뱅크사인은 정부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블록체인 기반의 차세대 인증 플랫폼으로 15개 이상 은행이 참여한 가운데 야심 차게 출범했다. 은행권 공동의 세계 최초 인증 플랫폼이라는 의의를 부여 받았지만 현재 참여 은행까지 방치하고 있는 서비스가 됐다. 은행연합회가 주도한 사업이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최근 뱅크사인을 뛰어넘는 분산신원확인(DID) 시장이 개화되면서 참여 은행도 모두 DID 진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뱅크사인 관련 마케팅은 전무하다. 오히려 뱅크사인을 타 기관으로 모두 이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21년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을 통한 이용자 수가 30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금융사들이 표면적인 디지털 전환인 '립스틱 디지털'을 걷어내고 톱다운 방식의 '전체론적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