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산업 강국을 위한 고민

[데스크라인]산업 강국을 위한 고민

“지난 10년 동안 위기 아닌 적이 없었다.”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무선사업부장)이 최근 글로벌 경쟁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를 기반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확고한 선두권에 서게 됐지만 그동안 항상 위기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갤럭시S 시리즈의 새로운 10년을 열 '갤럭시S20' 공개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에게서 비장함이 묻어난다. 우리나라 제조업과 산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 비장함을 무기로 우리나라는 세계 5위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섰다.

범위를 최근 1년으로 좁혀도 우리나라 산업계는 위기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치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우리 산업의 뿌리인 반도체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이미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온 반도체 산업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심상치 않다는 기류가 업계를 뒤덮었다. 수십년 동안 핵심 소재 부품 국산화에 매진했지만 아직도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산업 생태계에 대한 냉철한 자기반성이 뒤따랐다. 민·관이 합심해서 핵심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 대한 국산화와 수급 안정화 조치가 이어졌다. 뒤이어 불화수소 국산화 등의 성과가 속속 나오면서 일본 수출 규제 위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는 모습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산업계 전반의 공감대와 비장함이 이뤄낸 성과다.

이번에는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복병까지 불거졌다. 중국 공장의 와이어링 하네스 부품 생산이 중단되자 현대·기아차의 모든 국내 공장이 가동을 멈추는 상황을 목도했다. 일본에 이어 중국발 위기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 하나 틀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내 코로나19 감염자 확산 속도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중국을 비롯한 국내 제조업 생산도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모양새다. 이번에도 우리나라 제조업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낼 것이다.

일본과 중국발 위기는 우리 제조업과 산업계 전반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국산화와 수입 다변화를 포함한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런 위기가 언제 어디서 다시 재발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제조업 및 산업 강국을 위한 전략이 도출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참여하는 글로벌 공급망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국내 산업 생태계는 어떻게 고도화할 것인지가 포함돼야 한다. 국내 제조업이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일본과 중국발 위기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는 구조적인 요인인지, 단기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요인인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중·일 3국을 포함한 동북아 및 글로벌 공급망은 부품 수급부터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공급망 효율성 극대화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단기적인 처방과 대응으로 뿌리를 뒤흔드는 것은 자칫 위기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흔들리지 않는 산업 강국을 위한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양종석 산업에너지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