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미국 vs 화웨이 5G 전쟁 '장기전 돌입'

미국, 압박 수위 갈수록 높여
화웽, 가격-성능 현실론 맞서
5G 첨단 기술-장비 둘러싼
시장 쟁탈전 장기화 전망

화웨이
화웨이

미국 정부와 화웨이 간 갈등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화웨이가 보안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다며 법적 규제 수단은 물론이고 외교력과 자금력까지 총 동원해 압박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화웨이도 반박을 거듭하며 한치도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가격 전략을 총동원하며 유럽과 아시아, 러시아 등 주요 시장에서 방어전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화웨이라는 전선 위에서 미국과 중국의 세계패권 전략이 충돌했다. 이면에는 5G 시장과 첨단 기술·장비 주도권을 둘러싼 양국의 치열한 시장주도권 쟁탈전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안보' 명분으로 화웨이 압박

미국 뉴욕 연방 검찰은 화웨이가 기업 부패 범죄 처벌법(RICO)을 위반했다며 16개 혐의를 적용해 추가·기소했다. 화웨이 본사와 미국 내 자회사, 런정페이 회장 딸인 멍 완저우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 검찰은 화웨이가 오랜 기간 미국 기업의 영업비밀을 빼돌리고 지식재산권을 도용하려 했고 미국 제재 대상인 북한과 이란을 지원했다는 혐의도 적용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중국과 무역 협상 결렬 직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화웨이와 70여개 계열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국 기업이 화웨이와 거래를 할 때 정부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동시에 파이브 아이즈(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동맹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EU),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등 국가에 화웨이 5G 장비를 사용하지 말아달라며 제재 동참을 촉구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핵심 안보장비를 제외하고 화웨이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독일 집권당인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도 5G 장비 보안요건을 강화하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에만 화웨이가 배제하도록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추가 기소를 단행한 것은 화웨이 제재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 제재 불참 선언 이후 열린 독일 뮌헨안보회의(MSC)에서는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 등 화웨이 5G 장비 대안까지 거론하며 EU 국가 제재 동참을 촉구했다.

◇화웨이 '실리' 앞세워 방어전선 구축

화웨이는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하며 제재 수위를 높인 미국 압박에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3분기 유럽, 동남아시아 시장 등에서 경쟁우위로 같은 기간 65개 사업자와 5G 장비를 공급, 세계 5G 장비시장 점유율 31.2%로 1위를 회복했다.

스파이 위협에 대해 명확한 기술적 증거를 제시하라고 미국 안보 위협 명분에 대응하는 동시에 '현실론'과 '실리'를 앞세운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이 미국의 화웨이 제재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건 복합적 이유라는 분석이다.

당장 5G 시장에서 화웨이를 현실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이다. 보다폰, 도이치텔레콤, 텔레포니카 등 범 유럽을 권역으로 사업하는 이동통신사는 LTE 시장에서 가격경쟁력과 성능을 검증받은 화웨이 장비를 활용한다.

보다폰은 영국 정부 방침에 따라 화웨이 5G 장비를 구축하되, 핵심장비에서 화웨이를 제거할 계획이지만 향후 5년간 2억파운드(약 3071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에 텔레포니카는 독일에서 화웨이 장비로 5G망을 구축하기로 했고 도이치텔레콤은 화웨이 장비를 장기적으로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EU 각국 정부는 이통사와 산업이 대응할 시간을 벌어줘야 하는 상황이고 화웨이는 이 같은 지점을 집중 공략하며 화웨이 장비를 채택해달라고 설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5G 초기 기술인 비단독규격(NSA)는 LTE 코어망에 5G 기지국을 연동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상호호환성이 필수다.

◇미국 vs 화웨이 공방전 향방은

미국 정부와 화웨이 간 공방전이 어느 한 쪽 완전한 승리로 쉽게 끝나리라고 보는 전망은 많지 않다.

화웨이는 현재의 상황을 '전시상태'로 인식하고 중국의 국가 역량을 결합해 대응할 태세다. 런 정페이 회장은 “모든 직원이 특공대가 돼야 한다”며 24시간 대응체제를 가동하며 임직원을 독려했다. 화웨이는 연구개발(R&D) 비용 20조원을 투자해 자체 모바일 운용체계(OS), 인공지능(AI), 5G 장비를 개발한다. 미국의 소프트웨어(SW) 기술종속에서 벗어나 자체 가격경쟁력과 성능을 강화한 제품으로 시장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13억 인구 내수 시장과 결합하면 결코 글로벌 시장에서 호락호락하게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화웨이는 정보통신기술(ICT) 일대일로 전략 일환으로 중국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유럽을 잇는 거대한 해저케이블을 구축,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한다.

미국은 압박을 강화할 태세다. 글로벌 패권을 바탕으로 한 안보 전략은 물론이고, 기술 측면에서도 SW 일변도 산업에서 벗어나, 5G 장비·인프라 구축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천명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화웨이 보이콧을 계기로 중국에 빼앗긴 글로벌 HW 장비 공급망을 되찾지 못하면 국가안보는 물론이고 5G 초연결 인프라 경쟁에서 궁극적으로 중국에 밀리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결론적으로 양측 모두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권헌영 고려대 교수는 “트럼프 정부에서 미·중 간 사이버 안보싸움이 가속화되고 경제 분쟁과 연동되는 한 가운데에 화웨이 보이콧 논란이 자리잡고 있다”며 “쉽게 끝나기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