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 뮤지컬 분야에도 불고 있는 복고의 바람
 
예전 가요 프로그램들을 유튜브를 통해 다시 볼 수 있게 되면서 8~90년대 가수들의 앳된 모습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탑골 지디’라는 별칭으로 유튜브 스타로 떠오른 가수 양준일이 JTBC 예능 프로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3’를 통해 화려하게 컴백하기도 했고 그때 그 시절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이돌 가수들이 완전체로 컴백하여 다시금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기도 하다.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복고로의 회귀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으로 복고주의에 힘입어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장기간 경제적 불황이 계속되면서 뮤지컬에도 복고 바람이 불었다. 홍콩 영화 붐이 일어났던 1980년대 영화인 ‘영웅 본색’과 1990년대 공전의 히트를 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 무대에 올라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故 김성종 연출과 송지나 작가의 1991년 작품으로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상 역대 최고 시청률 순위 TOP 50에서 58.4%라는 기록으로 9위에 올라 있다.
 
당시 드라마가 방영되는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우리나라 국민의 과반수가 하던 일을 멈추고 TV 앞에 모였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최재성, 채시라, 박상원이 주인공으로 출연해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옥과 대치의 철조망 키스신과 일본군에서 탈출한 대치의 뱀 먹는 장면이 회자되고 있을 만큼 마성의 매력을 가진 범국민적 드라마였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일간 스포츠에 6년간 연재되었던 소설가 김성종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학도병’ 피해자 이야기를 비롯하여 해방 이후 제주 4.3사건 그리고 6.25전쟁까지 방대한 대한민국 근 현대사를 담아내어 대서사시로 자리매김하였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MBC 방송국은 물론이고 케이블 TV에서 재방송되고 있으며 작년 12월 30일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팀이 축하공연을 펼칠 만큼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잊히지 않는 추억의 드라마로 기억되고 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2019년 신도림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초연을 올리기로 되어 있었던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투자 사기를 당해 예정되었던 날짜보다 시작일이 미루어지기도 하였다. 공연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지만 3.1운동 100주년 기념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이라는 의미 있는 해였기에 제작진과 창작진, 그리고 배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위기를 극복해냈다.
 
기존의 뮤지컬과는 다르게 무대 장치를 최소화하고 무대 위에 ‘나비석’이라 이름 붙여진 관객석을 만들어 무대 위 배우와 무대 아래 관객이 함께 런웨이를 걷는 듯한 형식의 공간 활용을 보였고 배우들의 열정이 담긴 몸짓으로 공간을 채우며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어 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이렇듯 제작진과 창작진 뿐만 아니라 배우들까지 모두가 하나 되어 만든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평단으로부터 잘 만든 창작 뮤지컬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올해 1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걸맞은 완성된 무대 장치 및 세트로 다시 돌아왔다.
 
방대한 36부작의 대하드라마를 2시간 4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다 담아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원근감을 강조하는 경사 무대를 사용해 길고 긴 우리 역사의 이야기와 배경을 담아내고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경사 무대가 입체적으로 잘 보여서 좋기는 하지만 실제로 공연하는 배우들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서울, 난징, 상하이, 하얼빈, 사이판, 제주, 지리산까지 여옥과 대치, 하림 세 주인공이 다녀갔던 공간들을 앙상블을 포함한 무대 위 모든 배우들이 감성적인 연기와 역동적인 군무로 잘 표현해내고 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초연은 제작비 문제로 인하여 MR을 사용하였지만 이번 재연에는 대극장 규모에 맞게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진행되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삽입된 OST 곡뿐만 아니라 웅장하면서 서정적인 뮤지컬 넘버를 들려주어 관람객들의 귀를 즐겁게 하여 준다.
 
민족의 아픔이자 개인의 고통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학도병 문제, 해방 후 좌우익의 대립, 신탁통치, 제주도 4.3사건 그리고 6.25 전쟁과 지리산 빨치산까지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롯이 전하고 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초연에서 여옥 역으로 출연하여 인생 작품을 만났다는 평을 들은 바 있는 배우 김지현이 이번 재연에도 여옥 역으로 출연하고 뮤지컬 ‘오! 캐롤’과 뮤지컬 ‘친정엄마’, 뮤지컬 ‘드라큘라’ 등에 출연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진한 감정 연기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는 최우리 배우. 걸그룹 쥬얼리 출신으로 뮤지컬 ‘영웅’, 뮤지컬 ‘All Shook Up(올슉업)’ 등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박정아 배우가 새롭게 여옥 역을 맡았다.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 뮤지컬 ‘루드윅’에서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한 배우 테이와 뮤지컬 ‘그날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배우 온주완이 대치 역을 맡았으며 드라마 ‘태양의 계절’, 드라마 ‘오로라 공주’ 등 안방극장을 주 무대로 활동했던 배우 오창석이 또 다른 대치 역을 맡아 관심이 집중된다.
 
뮤지컬 업계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받아왔던 오창석 배우가 첫 뮤지컬로 선택한 만큼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같은 배역의 테이, 온주완과는 또 다른 대치를 연기해 삼인삼색의 각기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초연에서 장하림 역을 맡았던 배우 이경수가 이번에도 장하림 역으로 출연하면서 더 진해진 감정선을 보여주고 브로드웨이 출신 배우 마이클 리가 같은 배역을 맡아 재연에 참여하게 됐다.
 
 ◇ 뮤지컬 OST 영역에도 기여하는 K-POP의 한류 열풍
 
지금의 한류를 만든 밑거름에는 J팝, H팝 등 해외 문화를 흡수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낸 세대의 공이 크다. 80년대와 90년대 홍콩 음악, 홍콩 영화에 몰두한 홍콩 영화 키드 세대에게 홍콩 누아르 영화의 시초였던 영화 영웅 본색은 오우삼 감독이 연출을 맡고 서극 감독이 제작에 참여하여 여전히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레전드 영화로 남아있다.
 
1997년 7월 1일 155년간의 영국 식민지 지배 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으로 귀속되는 홍콩 회귀, 홍콩 반환을 앞두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홍콩 사람들의 불안함과 어둡고 우울한 면을 그리며 남자들 세계의 우정 의리 배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영웅 본색은 영어 제목 ‘A Better Tomorrow’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홍콩의 더 나은 내일을 갈망하는 오우삼 감독의 뜻을 보여준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친구와 가족을 위해서라면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쌍권총을 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들의 의리와 우정 앞에 광적으로 열광했던 세대를 살았기에 영화 영웅 본색을 뮤지컬 영웅 본색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과연 이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만감이 교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컬 연출가라고 불리는 왕용범 연출이 영웅 본색을 뮤지컬 무대에 완벽하게 재연해 내었다. 제작진이 직접 홍콩에 가서 찍어 온 홍콩의 도시 전경 영상이 무대 위 1,000개의 LED 패널을 지나면서 화려한 홍콩을 그대로 재현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영웅 본색 영화 시리즈는 총 세 편으로 영웅 본색이 생각지도 못하게 흥행에 성공하게 되면서 급하게 후속편이 제작되었다. 영웅 본색 2까지 흥행을 하자 영웅 본색 3가 제작되었는데 오우삼 감독이 연출을 거절하여 제작을 맡았던 서극 감독이 직접 연출을 하였다. 영화의 배경을 홍콩에서 베트남으로 옮겨 영웅 본색 1에 출연했던 마크(주윤발)의 프리뷰 버전으로 주윤발, 매염방, 양가휘가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뮤지컬 영웅 본색은 영화 영웅 본색 1과 2의 판권을 구매한 후 영웅 본색 1의 큰 줄기에 영웅 본색 2의 가지를 덧붙여 창작되었다. 영웅 본색의 스토리와 캐릭터는 물론이고 OST 곡까지 다 가져왔기에 영화 영웅 본색의 줄거리는 잊었을지 몰라도 주제곡은 잊지 않고 있는 영웅 본색 팬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살려내었다.
 
영웅 본색 1편에서 장국영이 불러 영화의 비장미를 더해준 당년정(當年情)과 2편에서 총에 맞은 장국영이 공중전화박스에서 부인과 통화하며 갓 태어난 딸의 소식을 들으며 죽어가는 명장면에 더해 장국영이 부르는 주제곡 분향미래일자(奔何未來日子)가 한국어로 번안되어 뮤지컬 영웅 본색 무대에서 흘러나온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영웅 본색’을 통해 본 레트로 열풍

뮤지컬 영웅 본색에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영화 영웅 본색 1에서 당년정과 함께 OST로 사용된 노래가 하나 더 있다. 나문이 부른 기허풍우(幾許風雨)는 구창모의 노래 희나리를 번안한 곡으로 당시 영웅 본색 1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익숙한 노래가 나와서 휘둥그레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영웅 본색 주제곡 이외에도 매염방이 부른 사수유년(似水流年)과 등려군의 노래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 장국영이 부른 공동도과(共同渡過), 스탠드업(Stand Up), 대열(大熱), 무수요태다(無需要太), 전뢰유니(全賴有你),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 장국영과 진결영의 듀엣곡 지파부재우상(只怕不再遇上) 등이 한국어로 번안되어 사용되고 있다. 매염방의 노래와 등려군의 노래는 장국영이 생전에 콘서트에서 직접 부른 노래들로 장국영과 인연이 깊은 곡들이다.
 
아쉽게도 뮤지컬 ‘영웅 본색’은 이슈가 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하여 일부 공연이 취소된 상태이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되살려주는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오는 2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되고 있으니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준비해 조심스레 공연장을 찾아보면 어떨까 한다. 다음에도 무대에 올려진다면 좋겠지만 누구도 보장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김현주 객원기자 (hj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