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4>앙겔라 메르켈-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다

[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4>앙겔라 메르켈-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다

앙겔라 메르켈(Angela Dorothea Kasner)은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그녀는 출생 한 달 만에 루터교 목사인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를 따라 1954년에 동독으로 이주했다. 메르켈은 1989년 독일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공산당 체제 아래서 교육을 받았다.

메르켈은 1985년 화학박사 학위를 취득 후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일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 달 12월, 민주개혁당(DA)에 가입했다. 메르켈은 민주개혁당에서 재정담당관과 대변인에 임명된다. 1990년 3월 선거에서 민주개혁당은 동독기민당과 합당했다. 동독기민당과 서독 기민당은 10월 1일에 열린 통합전당대회에서 통합을 결정했다. 메르켈은 11월 중도우파성향의 기민당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다음 달 12월에 치러진 동서독 총선에선 서독기민당, 동독기민당, 자유민주당 연정이 승리했다. 서독 기민당 헬무트 콜은 내각을 구성했다. 헬무트 콜은 앙겔라 메르켈을 적극 도왔다. 콜은 당내기반도, 추종 세력도 없던 메르켈을 통일 독일의 상징이라 부추기며 부당수로 밀었다. 메르켈은 콜의 총애와 신뢰로 정치 기반을 다져나갔다. 콜은 메르켈을 1기 내각에서는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5기 내각에선 환경부 장관에 임명한다. 언론은 메르켈에 대한 콜의 각별한 신임을 '헬무트 콜의 딸'이라 표현했다.

2013년 출간된 책 '앙겔라 메르켈의 첫 인생:DAS ERSTE LEBEN DER ANGELA M.'은 메르켈이 동독 공산당 선전-선동 활동을 한 열성당원이었다고 밝혔다. 공산당 청년단체인 '자유독일청년(FDJ)'에 가입한 경력을 폭로한 것이다. FDJ는 막스 레닌주의와 공산주의 모범행동 양식을 주입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다. 청년 75%가 가입했다는 기록이 있는 FDJ는 동독 공산당이 예비 엘리트 당원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창설됐다. FDJ 전력이 폭로되자 메르켈은 당황했다. 메르켈 행적을 아는 주변인들의 잇단 증언이 쏟아졌다. 그녀는 정치가 아닌, 극장에서 매표나 하는 사회, 문화 활동이 목적이었다고 변명했다.

메르켈은 국회의원이 되기 1년 전까지 물리·화학 연구자에 불과했다. 영국 최초로 총리가 된 마가렛 대처 역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대처는 대학 입학 후 줄곧 정치활동에 참여한 반공주의, 반사회주의자였다. 메르켈은 정치활동은 물론 반(反)동독 운동도, 동독체제에 대한 비판도 한 적이 없다. 메르켈은 총리가 되기 전까지 공산주의 경력을 검증 받은 적이 없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 행적을 감추려 한 적이 없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헬무트 콜 총리가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돼 사임하자 메르켈은 콜에게 등을 돌렸다. 메르켈은 “콜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지만 고맙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맙기는 한데, 내 노력이었어'란 말이다. 정치 감각이 뛰어난 것일까, 공산당 선명성이 학습된 결과인 것일까.
메르켈을 두고 무티 리더십(Mutti:엄마)이라 부른다. 그녀가 2015년 난민수용정책을 선언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난민을 끌어안았다. 트럼프는 “불법이민자들로 저임금과 실업률로 나라가 힘들어진다”고 충고했다. 무슨 소리야, 포용력이야말로 진정한 엄마 리더십이지. 국민은 힘들게 쌓아왔던 독일경제가 흔들리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국가 지도자의 사상과 가치관은 부국강병의 리트머스다. 역사는 지도자의 방심과 조심 사이를 기록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새겨들을 일이다.

[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4>앙겔라 메르켈-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다

박선경 남서울대 겸임교수 ssonn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