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음원 사재기 부추기는 저작권료 정산 방식, 개선 필요하다

[기획]음원 사재기 부추기는 저작권료 정산 방식, 개선 필요하다

음원 사재기 논란이 다시 불거지면서 현행 저작권료 정산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세진다.

재생 횟수가 많은 곡에 이용자가 낸 저작권료(수익)가 집중되는 현행 정산 방식이 사재기를 부추길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이용자가 내는 비용이 자신이 듣는 음원 중심으로 배분되지 않는다. 본인이 낸 이용료가 듣지도 않은 음원에 배분될 수 있다.

전체 음원 재생횟수가 늘어날수록 창작자 음원이 저평가된다는 것도 문제다.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2020년 저작권 보호 분야의 10대 이슈 중 3위로 '음원 저작권료 정산· 분배' 문제를 꼽으며, 저작권료 정산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제도적·기술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디 음악만 들었는데, 내 돈은 차트 상위권 뮤지션에게

국내 음원 사업자는 저작권 정산과 분배 시 문화체육관광부 '음원 전송 사용료 징수 규정'을 기반으로 한 '비례배분 방식(pro-rata)'을 사용한다.

멜론, 벅스 등 개별 음원서비스마다 이용자가 지출한 총 금액을 전체 이용자 총 재생수로 나눈 뒤 1곡 재생당 저작권료, 일명 곡당 단가를 산정한다. 한 서비스 내 모든 곡당 단가가 동일해지는 것이다.

이 곡당 단가에 특정 음원 재생 수를 곱해 각 저작권자에게 배분(저작권자=65%)하는 방식이다. 언뜻 단순하고 명쾌해 보이는 이 정산방식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이용자가 내는 비용이 실제로 이용자가 듣는 음원이 아니라 이용자가 듣지 않는 음원에 지불될 가능성이 크다. 이용자 월정액 요금은 같은데도 인기가 높은(차트 상위권에 있는) 아이돌 가수 음원에 저작권료가 더 많이 돌아가게 된다는 의미다.

일괄적으로 곡당 단가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창작자 또는 기획사는 음원차트 상위권에 더 오래 머물수록 수익이 커진다. 사재기를 하더라도 상위권에 오래 머물면 얼마든지 '원금 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재기를 부추길 수 있다.

반면 재생 수가 많지 않은 인디 뮤지션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사재기를 통해 '뻥튀기'된 총재생수에 의해 낮아진 곡당 단가의 결과물로 훨씬 더 적은 저작권료를 받게 되는 셈이다. 자신이 만든 음원이 저평가받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차트 위주 음원서비스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사재기 이슈가 커질수록 신규 뮤지션 진입은 감소하게 된다”며 “다양성을 기반으로 성장하며 'K팝'이라는 고유문화까지 만든 생태계가 고착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용자중심 정산' 모델 대두

사재기와 음원 저작권료 정산·배분 이슈는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사재기 이슈는 동일하게 나타난다. 저작권료 정산 방식 개선에 주목하는 이유다.

현재 가장 유력한 모델은 일명 '이용자중심 정산(User-centric)' 방식이다. 2014년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안트 마스와 덴마크 로스킬레 대학의 라스무스 렉스 필러슨에 의해 고안됐다. 이 방식의 핵심은 '이용자 1명 단위의 정산'에 있다.

개인 이용자 지출 금액을 해당 개인 월별 재생수로 나눠 1곡당 단가를 산정하고, 이 곡당 단가에 해당 개인이 특정 음원을 재생한 횟수를 곱해 저작권료를 최종 확정하는 형태다. 전체 매출액을 총 재생수로 나누는 '비례 배분' 방식과 달리, 이용자가 재생한 곡의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가 오롯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현행 정산 방식 하에서 인디뮤지션 A그룹을 좋아하는 B씨 상황을 가정해보자. B씨는 지난달 8000원 요금을 내고 A그룹 음악만을 총 100회 재생했다. 하지만 B씨가 낸 금액 중 저작권료는 65%에 해당하는 5200원은 A그룹보다 차트 상위 뮤지션에게 대부분 돌아간다. B씨의 재생 횟수가 나머지 전체 이용자 재생 수에 합산되기 때문이다.

이용자중심 정산방식에서는 다르다. B씨 8000원 중 저작권료 5200원이 책정되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A그룹 음악만 100회를 재생했다면 이 5200원이 A그룹을 비롯한 음반제작사, 저작자, 실연자에게 오롯이 지급된다. 정산방식이 더 세분화되는 탓에 다소 복잡한 점이 있지만 비례배분 방식보다 공정한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1위 음원 사이트 디저(Deezer)는 지난 1월 이용자 중심 저작권료 정산 모델 도입(파일롯 테스트)을 선언했다.
프랑스 1위 음원 사이트 디저(Deezer)는 지난 1월 이용자 중심 저작권료 정산 모델 도입(파일롯 테스트)을 선언했다.

◇프랑스 디저, 변화를 시도하다

이러한 방식이 실제 창작 생태계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연구 결과로 증명되기도 했다.

2017년 핀란드 음악가협회가 스포티파이 프리미엄 회원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비례배분 방식에서는 상위 0.4% 음원 저작권료가 전체 저작권료 10%를 차지했다.

반면에 이용자중심 정산 방식에서는 상위 0.4% 음원 저작권료가 전체의 5.6%만 차지했다. 쏠림 현상이 줄어들고 더욱 다양한 음원에 수익 배분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분배 불평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해당 모델을 실제로 도입하려는 시도도 이어진다. 지난 1월에는 프랑스 1위 음원 사이트 디저(Deezer)가 해당 모델 도입(파일롯 테스트)을 선언했다.

디저는 “기존 정산 방식은 유명한 아티스트나 대중적인 장르가 인디뮤지션이나 마이너 장르보다 더 혜택을 받게 되는 구조인데, 덜 보편적이라는 이유로 더 적은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로운 정산 모델 하에서는 성별이나 연령대별 선호에 따른 인구통계 왜곡과는 무관하게 정산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도입 취지를 밝혔다.

디저는 이와 함께 '#makestreamingfair'라는 해쉬태그 공유 캠페인을 이어간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수많은 인디뮤지션이 해쉬태그를 공유하는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유럽에서도 논의 활발

독일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업계와 학계 중심으로 일어나다. 독일 출판사, 뮤지션, 변호사 등은 'Fair Share'라는 슬로건 아래 스트리밍 계산 방식의 근본적 재구성을 요구하기 위해 4개 주요 음반회사인 유니버설, 소니, 워너, 버텔스만뮤직그룹(BMG)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해당 서한은 음악적 다양성 보존이 필요하다는 제언과 함께 스트리밍 수입의 공평한 분배를 골자로 한다.

유럽 작곡가 전문협회 'The Ivors Academy'의 크리스핀 헌트 의장은 한 간담회에서 “이용자 중심 정산 방식을 도입한 디저 모델이 더 공평한 저작권 사용료의 분배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머징 마켓인 라틴 아메리카나 인도를 중심으로 스트리밍의 비중이 커져감에 따라 주요 레이블사가 이런 이용자 중심 모델로 변화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포브스도 지난 1월 칼럼에서 경쟁이 치열한 음원 스트리밍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저와 같은 사용자 중심 정산 방식 도입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