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열린혁신 플랫폼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전략기획실장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전략기획실장

기술 혁신만으로 복잡한 사회 난제를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발상은 과학 기술자의 시대착오일 것이다.

미세먼지 문제는 좁은 의미의 대기과학·환경기술뿐만 아니라 규제와 외교를 포함하고 있다. 국가 산업 구조와의 관련성 속에서 인식돼야 한다. 자율주행차나 원격의료 또한 개별 요소 기술은 이미 완성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관건은 제도와 인프라에 대한 사회 수용성이다.

지금까지 혁신 확산의 발목을 잡은 것이 사업화 과정의 경제성이었다. 갈수록 사회와 소비자 수용성이 문제화하고 있다. 죽음의 계곡을 건넜더니 다윈의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 형국이다.

선진국은 공공 난제의 효과 높은 해결을 위해 혁신 랩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해결책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발굴, 대안을 모색한다. 실험을 통해 해결에 접근하는 전체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북유럽 국가 등에서 공공 부문의 혁신을 위한 시스템 접근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는 것도 맥락을 함께한다. 혁신 랩 접근 방식의 특징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문제 발굴과 해결 과정 통합이다. 누군가 발의하면 다른 주체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의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경험에서 기인한다. 정보 비대칭에 따른 주인-대리인 문제는 공공 부문 비효율성의 원인이다. 임시방편의 해결밖에 할 수 없는 중개 조직의 신설로 귀결된다. 또 다른 사회 비용을 발생시키곤 한다.

다수의 혁신가가 지적하듯 창의 형태의 문제 해결 기본 조건은 문제를 새롭게 재정의하는 것에 있다. 시스템 접근에서는 시민을 정부정책과 서비스 공동 생산자, 공동 설계자로 간주한다. 진정한 사회 난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 인식 혁신도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둘째 난제 해결 방안을 산업과 현장 전문가를 통해 찾아내려고 한다. 혁신 랩 접근에서는 얽혀 있는 여러 이슈를 풀어낸다.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참여자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이들이 같은 언어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이 방식이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문제 해결 관점이 비즈니스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론 및 개념 상의 문제 정의가 아니라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풀어내려는 시도다. 적어도 공공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 신설에 앞서 시장 참여자의 판단을 전제로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 문제를 민주 정책 과정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혁신 랩의 다양한 시도가 중앙 또는 지방정부의 예산 사업과 연결돼야 하는 논리가 된다. 현장 전문가에게는 참여 유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는 '합의가 없으면 지원도 없다'는 원칙이 중요하다. 새로운 시도, 도전하는 실험에 민간 참여자 간 합의 없이는 지속 가능한 정책 실험이 불가능하다.

올해부터 국책연구기관 중심으로 진행되는 한국형 열린혁신랩 실험에 대한 기대가 크다. 사회 수용성 실험을 하기에는 정책 집행기관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불확실성이 높은 정책 환경에 대한 애자일한 대응이라는 의미다. 열려 있는 다양성과 높은 지식 네트워크로 난제 해결 실험의 플랫폼이 된다. 정책연구 혁신이라는 의의가 있다.

다만 여러 참여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편향되지 않고 일관되면서 반복된 방향성 제시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결 조건과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 공감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전략기획실장 pcs1344@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