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코로나 악수'

며칠 전 지하철역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지인 A씨를 우연히 만났다. 4·15 총선 출마를 위해 공직에서 물러난 뒤 야당 공천을 받아 지역구 후보로 나선 이다. A씨는 이름과 사진이 큼지막하게 새겨진 패널을 목에 건 채 개표구를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패널 사진 속 A씨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정작 그의 실제 얼굴은 마스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니 A씨가 '주먹'을 먼저 내민다.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있으니 주먹을 살짝 맞대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자는 것이다. 주먹에는 주먹으로. 서로 어색할 것도 미안할 것도 없는 코로나19 시대 인사법이다.

한 달 넘게 지속된 코로나19 사태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경제 부문의 타격은 물론 하다못해 인사 습관도 바꾸고 있다. 사람들은 악수 대신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거나 팔꿈치를 맞대기도 한다.

지난 4일 열린 대구시 정례조회에서 권영진 시장(왼쪽)과 표창장 수상자가 악수 대신 손가락 하트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열린 대구시 정례조회에서 권영진 시장(왼쪽)과 표창장 수상자가 악수 대신 손가락 하트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각료회의에 참석한 장관과 악수하려다 거절당하는 일을 겪었다. 메르켈 총리 자신도 이보다 앞선 행사에서 악수를 피해 왔는데 습관처럼 손을 내민 것이다. 손을 내민 이도 내민 손을 피한 이도 서로 탓할 게 없는,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장갑을 낀 채로 훈장을 수여, 화제가 됐다. 여왕이 훈장 수여 행사에서 장갑을 착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영국 역시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국민에게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두자는 자발적 캠페인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될 때까지 모임을 줄이고 재택근무를 늘리자는 식이다.

코로나19 사태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려는 마음은 모두 같지만 늘어나는 '코로나 악수'가 마냥 달가운 일은 아니다. 식당에 칸막이를 설치한 채 등을 맞대고 식사하는 모습도 코만 훌쩍여도 한 발 멀리 떨어지게 되는 지하철 모습도 낯설기만 하다.

비대면을 뜻하는 이른바 '언택트 사회'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나뿐만은 아니다. 웬만한 약속은 취소하는 와중에 어렵사리(?) 식사를 함께한 B씨는 사회적 거리를 두고 “누가 지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더 걱정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다. 현 상황이 정리된 뒤 일어날 수많은 변화는 한편으론 두렵기까지 하다.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후폭풍이 일 것이다. 자영업자부터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입은 손실을 어떻게 회복할지, 정부는 무너진 국민 신뢰를 어떻게 되쌓을지 과제가 수두룩하다.

무언가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또 다른 무언가는 사라진 것을 채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어디선가는 지금의 사태를 놓고 책임을 따지는 지난한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선거운동을 하던 A씨와 짧은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정치적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고생하는 이에게 힘내라고 손을 굳게 잡아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A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제대로 선거운동을 하지 못해 걱정이라며 평소의 그답지 않게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면을 빌려서라도 A씨를 비롯한 모든 이에게 힘내라고 전하고 싶다.

이호준 정치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