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이후 성장' 도와야 경제 성과·일자리 창출 높인다

[벤처 스케일업이 국가경쟁력]<1>왜 '스케일업'인가
美, 5% 차지 스케일업 기업서
신규 일자리 3분의 2 만들어
정부, 올 90개 사업...'지원책' 필요

지난해 우리나라는 기술창업 기업 수가 22만개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벤처투자액은 4조원대로 처음 진입했다. '제2 벤처 붐'이 다시 일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생명 주기는 짧다. 4개 스타트업 가운데 한 곳만이 5년 이상 생존한다. 2000년 초반의 '제1 벤처 붐' 당시에도 스타트업이 양으로 증가했지만 중견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대다수 소멸했다. 재현될 우려가 있다.

창업·스타트업의 씨앗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스케일업'(고성장)이다. '죽음의 계곡'(데스밸리)을 간신히 통과한 많은 벤처기업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자신문은 5회에 걸쳐 대한민국이 왜 벤처기업의 '스케일업'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금융, 정책, 문화, 인프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스케일업 생태계 진흥법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창업 이후 성장' 도와야 경제 성과·일자리 창출 높인다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나라일수록 스타트업·자영업자·소기업 비중이 낮다. 스타트업은 겉으로 볼 때 새로운 아이디어로 산업을 변화시키고 일자리를 만든다. 다만 실제로는 실업 대안으로 가동되는 측면이 있다. 실업률이 높을수록 창업 비율도 높아지는 셈이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은 미래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반드시 활성화해야 하는 중요한 경제 주체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창업국가'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창업지원 사업은 90여개에 이른다. 총 1조4517억원 규모다. 역대 최대치로, 작년 대비 30% 늘어났다. 전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만 총 1조2611억원을 투입한다. 그러나 스타트업 이후 단계의 기업 지원책은 여전히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경제 성과와 일자리 창출은 스타트업보다 스케일업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미국 벤처협회 카우프만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5%를 차지하는 스케일업 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3분의 2를 만들어 낸다. 지난 2014년에 중소기업청이 조사한 결과에서도 벤처·스타트업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고성장 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3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스케일업 기업 규모 자체는 초라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스타트업 기업 가운데 스케일업 기업 비율은 지난해 기준 6.5%로 영국(12.9%), 이스라엘(11.4%)의 절반 수준이다. 벤처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벤처기업 가운데 중견벤처라 할 수 있는 '천억벤처'(매출 1000억원 이상)의 비중은 2018년 기준 1.63%에 불과하다. 천억벤처 가운데에서 매출성장률이 20% 이상인 고성장 기업(가젤기업)은 4.8% 수준이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천억벤처까지 스케일업 성장사다리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정책 방향을 스타트업 창업 장려 단계를 넘어 스케일업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표>기업의 진화단계 <출처: 김애선 외 (2019)>
<표>기업의 진화단계 <출처: 김애선 외 (2019)>

해외 선진국은 일찌감치 스케일업 정책을 가동했다. 영국은 2014년 세계 최초로 스케일업 육성 전담 기관인 스케일업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스타트업 기업의 고성장과 지속 성장을 촉진하는 환경 조성이 목표다. 미국은 중소기업청(SBA) 주도로 2014년부터 '스케일업 아메리카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스케일업 기업인을 위한 교육, 멘토링과 기술 지원, 투자자 연결 등 밀착 지원을 한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테크스케일업' 지원에 초점을 맞춰 각각 127억달러, 187억달러 규모의 투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스케일업 기업을 위한 금융지원 제도도 5단계 이상으로 세분화돼 있다. 김선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22일 “스타트업 육성책으로 스타트업 수가 증가하고 생태계 규모가 커지긴 했지만 창업 숫자에 연연해선 안 된다”면서 “스타트업이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하려면 스타트업을 넘어 스케일업 생태계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