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OEM업계의 눈물…코로나19 여파 유럽·북미 수요 급락 '직격탄'

국내 전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및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 업계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 대유행) 직격탄을 맞았다. 최대 수요처인 유럽·북미 지역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 생산·출하 계획이 잇달아 취소되고 있다. 만성 경영난에 시달리던 OEM·ODM 중견·중소기업들은 자금 확보 길이 막히면서 심각한 생존 위기에 처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조사와 영상·음향·자동차 부문 OEM·ODM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업체들이 잇달아 유럽·북미 시장에 공급할 제품군 출하 일정을 연기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현지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황을 감안한 긴급 조치다.

한 자동차 ODM 업체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고객사가 모든 유럽향 물량의 생산 일정을 무기한 홀딩하라고 요청했다”면서 “비용 손실을 감수하면서 생산 라인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고객사가 사실상 물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업체들의 자금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통상 OEM·ODM 업체는 생산품을 고객사에 선적하고 계약 조건에 따라 10~90일 후 대금을 받는다. 이번 사태로 최소 수억원에 이르는 납품 대금 회수 일정이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공장을 떠나는 근로자도 늘었다. 숙련공이 대거 빠지면 향후 생산을 재개해도 고객사 주문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를 장기로 보면 회사 생존에 직결되는 고객사의 이탈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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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업력을 쌓은 한 음향기기 ODM 업체는 이달 전체 직원 가운데 약 30%에 대해 유급휴직을 시행했다. 최소 3개월 동안 기존 급여의 70%만 제공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현금 유동성이 악화되자 내린 고육책이다. 유럽·미국 소비 시장의 회복 시점이 늦어지면 무급휴직, 구조조정으로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 업체는 현재 중국과 베트남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애당초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자 베트남 공장 가동률을 높이며 대량 생산 주문에 대응했다. 그러나 고객사가 출하 중지를 요구하면서 이미 생산한 제품과 자재가 모두 재고로 전락하게 됐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최근 고객사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월마트 등 판매점 폐쇄 우려를 근거로 미국 출하를 취소했다”면서 “당장의 매출 감소도 타격이지만 이번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관계자는 “국내 OEM·ODM 업체 대부분이 현재 같은 위기를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정부와 가전업계 및 관련 협회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글로벌 제조사와 협력해 유통망 안정 확보, 젊은 기술 인력 양성, 부가가치 창출 등에 공헌한 OEM·ODM 산업이 코로나19 때문에 한순간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기업의 자금난 악화에 따라 핵심 기술자가 OEM·ODM 산업에 집중된 중국, 베트남 등 해외 업체로 잇달아 자리를 옮기면서 우리 기술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사태도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OEM·ODM을 비롯해 수출 비중이 큰 업체들이 코로나 사태로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았다”면서 “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업 재개 발판을 제공하기 위한 지원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