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희망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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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는 대략 10년 주기로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20여년 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는 국가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약 11년 전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달러의 소중함을 실감케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대한민국은 코로나19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른바 '10년 주기설'이 떠오른다. 1998년에 국민들은 당시 행정부의 무지와 무능력을 확인했다. '대마불사론'이 깨지는 사건도 목격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보유액이 바닥을 보일 경우 경제 주권을 내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09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도 비슷했다.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573원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2008∼2009년 금융위기 대처는 IMF 관리 체제 때보다 후한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코로나19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보건역학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제조산업·소상공인 현장이 기로에 섰다. 그나마 사태 발발 초기에 우왕좌왕한 모습을 보이던 시스템은 안정을 되찾았다. 코로나19 확진자 수 역시 6일 현재 50명 아래로 떨어졌다. 국내 상황은 소강상태로 진입했다. 급등락을 거듭하던 외환시장 역시 한·미 통화스와프 이후 편안해진 분위기다.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우리 국민은 저력을 발휘됐다. 마스크 기부는 IMF 구제금융 당시 금모으기 운동을 연상시켰다. 금전적 기부 릴레이 역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해외다. 미국과 유럽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과 군사적 충돌로 야기된 세계대전에 비유된다.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코로나19는 언젠가 잡힌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 장기화는 산업에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들인다. 우리는 1998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험했다. 1998년 이후 한보,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이 쓰러졌다. 은행원 상당수가 눈물을 흘리며 정든 직장을 떠나는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 이어졌다. 일하는 시간을 나누자는 잡셰어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20년 한국 상황도 20년 전이 데자뷔 될 공산이 커졌다. 대량실업·희망퇴직·고통분담 논의가 시작됐다. 한계기업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등 금융 당국의 역할이 커질 게 분명하다. 내수 침체에 따른 실업 문제도 마찬가지다. 불 꺼진 상가와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는 소상공인들의 긴 행렬은 이를 방증한다.

존 케인스는 1929년에 시작된 세계 대공황 이후 주목받았다. 케인스는 '이대로 가다간 모두 죽는다'는 논리를 앞세워 주류경제학자로 우뚝 섰다. 미국에서는 뉴딜 정책이 전개됐다. 상황은 다르지만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역시 일본판 양적완화 정책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게 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아베 총리의 무제한 양적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정책은 주효했다. 과거는 과거다. 그러나 역사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창이다.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고비 때 주효한 정책에서 한국형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공포, 패닉, 붕괴, 격리….'

코로나19가 본격 엄습한 올해 초부터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듣는 용어다. 그러나 생경하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단어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정신적 면역 기능을 강화했다. 사람들은 때로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생각해 막연한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절망'이다. 이제부터라도 희망을 노래하자. 당분간 우리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할 지 모른다. 1998년, 2008년보다 나아진 위기 대응 성적표를 받아 들자.

[데스크라인]희망찬가

김원석 경제금융증권부장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