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좌담회]벤처스케일업으로 혁신생태계 키우자

정부가 내년까지 유니콘기업 20개 탄생을 목표로 'K-유니콘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한다. 유니콘기업과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 다수 배출될 수 있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거대한 기초 설계도다.

세계 경제강국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스케일업을 주요 정책 과제로 주진했다. 스케일업 기업들이 국가경제의 혁신역량, 생산성 향상, 질 좋은 일자리 창출 등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스케일업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산업 토양을 만드는 게 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단순 규제해소를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을 스케일업 관점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전자신문은 국내 스타트업·스케일업의 정책 현황와 이슈를 점검하고, 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스케일업 정책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벤처 스케일업 정책 방향성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 좌담회가지난 2일 서울 구로구 벤처기업협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승규 전자신문 벤처유통부장, 김선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민성 앤슬파트너스 이사, 안건준 벤처투자협회장, 곽노성 한양대학교 특임교수, 박용순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혁신정책관.
벤처 스케일업 정책 방향성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 좌담회가지난 2일 서울 구로구 벤처기업협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승규 전자신문 벤처유통부장, 김선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민성 앤슬파트너스 이사, 안건준 벤처투자협회장, 곽노성 한양대학교 특임교수, 박용순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혁신정책관.

[참석자(가나다순)]

△곽노성 한양대 교수

△김민성 엔슬파트너스 이사

△김선우 STEPI 박사

△박용순 중기벤처부 벤처혁신정책관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

△사회=김승규 전자신문 벤처유통부 부장

◇사회(김승규 부장)=왜 '스케일업'이 중요한가. 우리나라 벤처스케일업 정책의 현 주소는.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역대 대부분의 정부에서 벤처육성 정책을 펼쳤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업계를 보면 사이즈별로 구분이 된다. 거대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한 벤처도 있고, 중간에 허리를 갖춘 스케일업 벤처도 있고, 설립 1년이 지난 스타트업도 있다. 하지만 그간 정부가 스타트업에 집중하다보니 허리를 놓쳤다. 스타트업 보다는 스케일업 단계의 벤처기업이 확장성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도가 높다. 벤처 스케일업에 있어 성장 단계별 적기의 자금 투입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성공적 시장 진입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다만 지금의 정부 주도의 한정적인 재정 지원으로는 글로벌화를 목표로 한 벤처 육성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대규모 민간자본의 유입을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스케일업 전용 매칭펀드 확대, 벤처스케일업 집중 케어 트랙 신설,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탈(CVC) 규제 완화, 민간 벤처투자 세제혜택 등이 절실하다.

◇김선우 STEPI 박사=우리나라에서 '스타트업' '스케일업'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정확한 정의는 아직 없다. OECD에서는 가젤기업, 고성장기업 등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국말로는 어떻게 표현할지, 어떤 규모의 기업을 스케일업으로 할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스케일업 육성 전담기관 '스케일업 인스티튜트'을 2014년 설립했다. 이곳에서 인구 10만명당 각 지역별 스케일업이 몇개인지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한다. 스케일업의 애로 사항이 무엇인지를 분석해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도 스케일업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보다 상세하게 스케일업의 현황 등을 명확히 조사 분석할 필요가 있다.

◇곽노성 한양대 교수=그간 정부에서 창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1인창업'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1인창업하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자금 담당, 기술자 등이 '원팀'을 구성해서 창업에 뛰어든다. 어떻게 팀을 잘 만들지에 대해 초점을 둔다. 스타트업에서 스케일업 단계를 지나 유니콘으로 가는 과정을 가장 잘하는 나라가 미국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싹이 보이면 자본도 붙이지만 컨설팅 등을 붙어서 빠르게 키운다. 다른 나라에서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로 신속 지원한다. 씨앗을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싹를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간 우리는 너무 양적인 지원에 치중했다. 미국과 영국의 스케일업 지원 정책을 보면 재정지원 중심이 아니라 '소프트파워'를 어떻게 강화할지에 집중하고 있다.

◇김민성 엔슬파트너스 이사=투자자 관점에서 보자면, 기업의 단계를 불문하고 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금이라는데 이견을 제시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금이 충분하면 좋은 인력을 데려올 수 있고, 기술개발을 남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할 수 있다. 또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인지도를 구축하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다. 기술혁신형 벤처기업은 고도의 기술개발을 위해, 플랫폼 업체는 자기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선순환이 돌 때까지, 자금이 근본적인 경쟁력이 되고 있다. 정부도 자금 위주의 정책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사회=업계에서는 벤처스케일업에 가장 큰 장애물로 규제를 꼽는다.

[특별 좌담회]벤처스케일업으로 혁신생태계 키우자

◇안건준=우리나라가 규제 장벽이 높은 이유는 첫째 기득권의 저항, 둘째 포지티브 규제, 셋째 소극행정으로 요약된다. 특히 기득권의 저항은 신산업과 기존 산업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기존 법과 제도의 틀로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혁신을 재단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유연한 접근과 진흥적 시각이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정부와 입법부의 적극적인 조정과 중재 역할도 중요하다.

◇곽노성=규제 개혁에서 시급한 게 '규제 불확실성'이다. 규제가 강하면 적응하면 되는데, 명확하지 않고 어제오늘 달라지면 적응이 안된다. 타다 사례가 대표적이다. 호응하던 정부가 외면했다. 법원 합법 판결에도 선거를 앞둔 국회가 밀어부쳤다. 어느 기업이 파괴적인 혁신을 시도할 수 있을까. 어느 투자자가 투자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정부가 강조했던 규제샌드박스 신속확인제도의 개선도 시급하다. 정부가 어떤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별 좌담회]벤처스케일업으로 혁신생태계 키우자

◇박용순 중기벤처부 벤처혁신정책관=규제란 것은 사회든 개인이든 누굴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고, 어떤 부정적 결과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규제를 푼다는 것은 한쪽에서 푸는 것이지만 다른 쪽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긍정적 영향을 받는 쪽과 부정적 영향을 받는 쪽을 모두 고려해서 더 큰 발전이 있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한쪽편을 들기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쪽도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혹은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사회전체를 아우르면서 더 큰 방향에 대한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별 좌담회]벤처스케일업으로 혁신생태계 키우자

◇사회=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의 규제완화에 대한 요구도 큰 것 같다. CVC 규제완화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는.

◇김민성=CVC는 독립법인격의 자회사를 지칭할 수도 있고, A라는 대기업이 있을 때 오픈이노베이션의 관점에서 직접 투자를 진행하는 것도 포함된다. 우선 전자의 경우에는 금산분리법 때문에 CJ, 롯데 등 많은 대기업에서 보유한 VC 또는 액셀러레이터의 지분구조를 변경했다. 이 외 최근 그룹 신성장동력 발굴 측면에서 준비하던 곳들도 금산분리법 때문에 주저하는 데가 몇 군데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은 금산분리법을 완화할 수 있는지가 고민해 볼 이슈다. 최근 후자의 경우처럼 직접 투자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지만 CVC 활동을 하는 대기업들은 투자한 회사의 실적이 모회사에 반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담을 상당히 많이 느끼고 있다. 국제채택회계기준(IFRS)을 적용하면 지분율 20% 이상일 때 관계회사로 편입, 20% 미만일 때는 단순 투자자산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투자를 하더라도 지분율 20% 미만으로 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그룹에서 볼 때 작은 회사가 그룹계열사로 들어오면, 전체 계열사당 매출(이익)을 깎아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안건준=CVC 투자의 장점은 잘 갖추어진 모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해 창업기업의 성장기반을 조성,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 개념이다. 기술 유출 또는 지배적 관계, 대기업의 금융업 영위 등의 부정적 인식을 벗고, 신산업 육성과 민간자본 유입을 위한 개선된 투자 환경 제공 측면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CVC를 기술금융의 중심으로 유도하기 위한 법■규제 개선과 '기술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법률' 강화, 대기업의 모럴해저드에 대한 처벌 강화 등 보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사회=최근 정부가 'K-유니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박용순=유니콘이 될만한 기업을 발굴하고, 민관이 힘을 합쳐 유니콘 기업을 만들자는 것이다. 후보군은 유니콘 기업에 가까운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인 예비유니콘과 그보다는 작지만 유니콘으로 클 가능성이 높은 아기유니콘을 선발·지원하는 것이다. 다만 정부가 전적으로 나서는 것은 아니고 시장에서 이미 검증했지만, 성장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자는 것이다. 아기유니콘은 그보다는 좀 더 많은 지원을 해서 빨리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각종 R&D, 사업화, 보증, 융자 등이 포함된다. 예비유니콘의 경우에는 대규모 보증과 탑티어 VC들이 K-유니콘 서포터즈를 결성해 공동투자도 진행하고, 정부에서는 글로벌 진출 지원도 하게 될 것이다.

[특별 좌담회]벤처스케일업으로 혁신생태계 키우자

◇곽노성=아마도 비슷한 사례가 '월드클래스300'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다. 월드클래스300의 경우에도 취지는 좋았으나 R&D, 금융, 해외 진출 등의 과제를 전담기관을 지정해 위탁 운영하다보니 실효성이 낮았다. 또 다른 R&D 자금지원 사업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스케일업 인스티튜트'처럼 인력, 시장, 리더십, 투자, 인프라 등으로 취약 부분을 나눠 맞춤형으로 약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는 지원체계를 구축했으면 한다. 이번 기회에 민관 합동으로 스케일업 정책 지원 기관을 만드는 것도 제안한다.

◇사회=정부가 스타트업에 집중 지원하면서 이른바 '좀비 기업'도 많이 양성됐다는 지적도 있다. 스타트업 정책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스케일업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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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우선 정부가 스타트업 정책과 스케일업 정책을 분리해야 하고, 민간이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할 일도 구분돼야 한다. 특히 정부에서는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일과 비예산으로 할 일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앞으로는 돈보다는 제도 개선 등 비예산 부분에 대해 더 관심 기울여야 하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기업의 사장들은 다 전과자이다. 우리나라 기업가정신도 60~70년대보다 크게 하락했다. 존경하는 기업가가 없다고들 한다.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생태계 환경 구축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스케일업에 성공한 기업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표준모델로 만들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쌓이면 성공 사례별로 맞춤형 지원책도 마련할 수 있다.

◇안건준=스케일업 정책이 너무 투자 쪽으로 쏠리는 경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장궤도에 오른 벤처기업에게는 규제 완화와 공정경쟁의 생태계 조성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정책의 균형과 시너지가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사업화할 수 있느냐가 국가의 혁신과 경제발전, 결국은 국민의 복지까지도 좌우하게 될 것이다. 특히 개편되는 벤처확인제도는 '벤처다운 벤처'를 선별하고, 스케일업으로 연결되는 게이트웨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선별된 벤처확인기업을 대상으로 스케일업 전용 트랙을 만들어 지원하고, 벤처확인기업 우대 제도도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

◇사회=벤처투자촉진법이 제정되면서 스케일업을 위한 자금 공급 규모가 커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VC들을 스케일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 있는가.

◇박용순=입법예고 기간이라 확정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장 핵심은 투자자간의 경계를 허문 것과 전면적으로 후속투자를 허용한 점이다. VC가 창업초기 기업을 보고 대규모 투자를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액셀러레이터 등이 투자한 기업들도 보고, 계속 관찰할 투자기업 풀(Pool)이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금융쪽에서도 벤처투자에 관심이 많다. 같이 일하면 그 풀은 넓어질 것이다. 그 풀 안에서 점점 투자규모를 키워가야 한다. 벤처투자의 성장사다리 구축과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참여하자는 것이다. 결국엔 투자했던 VC가 투자했던 기업을 가장 잘 안다. 후속투자가 가능하면 대규모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액셀러레이터, SPAC 자회사를 허용했기 때문에 벤처투자그룹처럼 역량을 키우면 대규모 투자까지 이어질 것이다.

[특별 좌담회]벤처스케일업으로 혁신생태계 키우자

◇김민성=국내 VC가 스케일업 투자를 확대하는 1차적인 방안은 한국벤처투자 등의 출자사업에서 투자 주목적 분야를 스케일업으로 하는 펀드의 규모를 확대하면 자연적으로 커질 개연성이 높아진다. 국내 VC 문화의 독특한 현상 중 하나가 모펀드에서의 출자사업을 통해 VC에 펀드 위탁운영을 맡기는 형태가 대다수이다. 출자기관이 투자 방향성을 일정 정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정책입안자 측면에서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출자사업에서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VC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위해서는 '엑시트(자금회수)'의 가능성이 중요하다. 코스닥 상장, M&A, 구주매각 등 엑시트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이 중에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한다면 고민해 볼 만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사회=스케일업 각 주체별로 제안할 점은.

◇안건준=정부의 조달시장을 통해 혁신벤처기업이 '진입→성장→도약'하는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고, R&D와 연계된 혁신제품의 조달 비중을 확보하는데 조달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기술제품 구매 대비 현재 약 0.3%에 불과한 벤처나라의 연간 구매 실적을 10%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박용순=코로나19로 벤처기업들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진단키트 업체나 비대면·온라인 관련 업체들의 역량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코로나19는 산업, 소비, 일하는 방식까지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재편되는 사회에 스타트업·벤처기업이 더 많이 기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정리=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