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언택트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ET단상]언택트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세계대전이 한창이다. 희망의 2020년대를 세기의 감염병과 사투로 시작하고 있다. 선진국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희생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류가 보이지 않는 적의 침공에 노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니다. 20세기만 해도 세계적 대유행이 여러 번 있었다. 가깝게는 10년 전 신종플루도 있다. 지금 위기는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이 아니라 토머스 프리드먼의 '블랙 엘리펀트'다. 최근의 미국·일본이 그리한 것처럼 커다란 코끼리가 방 안에 있는 걸 모두 알고 있지만 코끼리가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낼 때까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비판한 말이다.

코로나19라는 검은 코끼리가 무겁게 느껴지는 건 눈앞의 희생도 두렵지만 우리 삶의 근본을 바꿀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언택트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도 주요한 변화 전망 가운데 하나이다. 사실 언택트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사람끼리 접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디지털화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최근에는 무인 키오스크, 가상현실(VR) 등을 통해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심화와 함께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왜 새삼스럽게 언택트인가.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로의 전환이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조지타운대 데버라 태넌 교수는 “대유행으로 대인 기피 현상이 심화돼 공동체가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전망한다. 이쯤 되면 언택트는 사회적 거리 두기 수단을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된다. 기존의 단순한 편의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면 코로나가 가져올 언택트는 살아남기 위한 '잇템'인 셈이다. 언택트가 진행되는 폭도 넓고 깊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당황스럽다. 준비가 덜 됐기 때문이다. 유통, 마케팅 등 일부 상업 영역을 빼면 아직 멀어 보인다. 온라인 개강에서 나타난 혼란은 세계 제일의 인터넷 강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해질 정도다. 최고 명문대조차 온라인 개강에 애를 먹는 걸 보면 당분간 어려움을 더 겪을 것 같다.

언택트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세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첫째 언택트를 위한 인프라를 조속히 갖춰야 한다. “투자가 더 필요하다”식의 무책임한 제안은 하고 싶지 않다. 그 대신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존 자원을 더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동안 미국보다 약 5배에 이르고, 심지어 2위인 독일의 8개보다도 50%나 높다며 대표 '적폐'로 비난받아 온 우리의 병상 구비 수준(1000명당 병상 수 12.3개)이 코로나 극복 비결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단편 사례다.

둘째 언택트가 단순한 비대면 수단이 아닌 새로운 연결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래 언택트는 비대면·비접촉을 목적으로 하지만 만남을 대체하는 데에 그쳐선 안 된다. 온라인 개학처럼 대면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비대면을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은 새로운 대면도 가능케 한다.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산후조리원의 신생아 모니터링 시스템도 그 예 가운데 하나다. 인공지능(AI) 카메라와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아빠도 직장에서 24시간 아이를 볼 수 있고, 울음과 표정의 의미를 알려주어 신생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디지털의 심화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아날로그의 반격을 가져왔다. 역설이게도 언택트는 대면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

셋째 우리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창의성은 기술이나 디자인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서도 생긴다.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있는 '드라이브 스루'도 코로나에 대응하는 행동방식에 대한 간략한 고안일 뿐이다. 이 간략한 아이디어가 지금 우리 인류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세계를 지탱해 온 기존 시스템이 코로나 앞에서 테스트를 받고 있다. 심지어 세계 최강국 미국조차 의료시스템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코로나19는 21세기판 페스트다. 그러나 역설이게도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발전을 이룬 산업혁명, 뿌리가 되는 르네상스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페스트였다. '붕괴는 새로운 시작이다.'(Collapse is New Beginning) 세계 미래학자 짐 데이터 교수의 명언을 다시 한 번 새길 때다.

강수경 아이앤나 대표 laurensk7691@iand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