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리스크' 내몰린 삼성, "경영위기" 절박함 호소

'신경영 선언' 27주년 맞은 날
입장문 내고 불구속 필요성 알려
대외 불확실성·시장경쟁 격화 속
대규모 투자 집행 차질 불가피

삼성이 7일 신경영선언 27주년을 맞았다. 대외 위기를 극복하고 뉴삼성을 완성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경영권 승계 의혹 등으로 또다시 총수 구속 갈림길에 섰다. 주말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삼성이 7일 신경영선언 27주년을 맞았다. 대외 위기를 극복하고 뉴삼성을 완성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경영권 승계 의혹 등으로 또다시 총수 구속 갈림길에 섰다. 주말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 18일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시안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중국을 방문한 글로벌 기업인은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진교영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박학규 DS부문 경영지원실장 사장, 황득규 중국삼성 사장 등이 함께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 18일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시안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중국을 방문한 글로벌 기업인은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진교영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박학규 DS부문 경영지원실장 사장, 황득규 중국삼성 사장 등이 함께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이 2년 4개월 만에 총수 재구속 기로에 섰다.

8일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미중·한일 갈등이라는 동시다발적 대외악재를 돌파할 구심점을 잃을뿐 아니라 반도체 등 글로벌 초격차 경쟁의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크다. 7일로 27주년을 맞은 '신경영 선언'을 기념할 엄두도 내지 못한 삼성은 장문 발표문을 내고 불구속 수사 필요성과 경영위기 심각성을 호소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과 함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는다.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돼 1년여간 수감생활을 하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 부회장은 2년 4개월 만에 다시 구속 위기에 처했다.

삼성은 7일 언론 대상 장문 발표문을 내고 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 정상화 필요성을 호소했다. 언론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사실상 국민과 사법부를 향한 호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은 “삼성이 위기”라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경영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장기간 검찰 수사로 경영이 위축된 데다 코로나19 사태, 미중 무역분쟁으로 대외 불확실성까지 심화됐다”면서 “삼성 경영이 정상화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삼성은 이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 선언' 27주년을 맞았지만 이를 기념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총수 구속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라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놓으며 양에 집착하던 삼성을 품질 혁신을 선도하는 '글로벌 거인'으로 일궈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 자산은 40조원에서 802조원으로, 매출은 41조원에서 314조원으로 늘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신경영 선언을 기념하고 이 부회장의 '뉴삼성' 구상을 구체화해야할 삼성은 '사법리스크'에 휘청이고 있다. 2017년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신경영 선언 기념식은 자취를 감췄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병상에 누운 2014년 이후 경영 구상을 거듭한 끝에 2018년 8월 인공지능, 5G, 바이오, 전장부품 4대 성장사업 등에 180조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뉴삼성 구상을 구체화했다. 올해 5월 대국민 사과에서는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언급하며 뉴삼성 경영방침을 공식 천명했다. 이후 글로벌 경영인 최초로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는 등 코로나19 국면을 타개하고, 미중 무역분쟁 가운데 민간외교사절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4월 '반도체 2030 비전'을 선포하고 향후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도 1위 자리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재구속 갈림길에 서면서 글로벌 경쟁을 앞서나갈 골든타임을 놓칠 위기에 처했다.

삼성이 10년 내 1위를 목표로 내건 비메모리 분야 파운드리 시장에서 50%대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점한 대만 TSMC는 지난 달 미국 애리조나에 2029년까지 12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하는 등 삼성을 따돌리기 위해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은 세계 시장 점유율 36%로 1위인 낸드 시장에서도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으며, 세계 1위 스마트폰도 미국 애플과 중국 화웨이 등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속성 있는 대규모 투자는 책임감 있는 오너 경영인이 아니면 과감하게 집행하기 어렵다”면서 “꼭 구속 수사를 해야 하는지 사법 당국의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