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글로벌 이통사 "화웨이 배제 사실상 불가능"

유럽 등 점유율 하락 징후 없어
4G 장비와 호환-비용 문제도 발생
국제 보안 인증 세계 최초로 획득
3GPP 5G 표준 정립 기여도 1위

[기획] 글로벌 이통사 "화웨이 배제 사실상 불가능"

화웨이가 미국의 지속된 제재에서 불구하고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저변을 늘리며 미국 제재에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화웨이가 5G 표준 제정을 주도하는 등 5G 시장 영향력을 제고하고 있어 미국 제재의 실효가 약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美 제재에도 상승 지속

화웨이는 1분기 5G 이동통신 장비 시장점유율을 직전 분기 대비 0.4%P보다 높인 35.7%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 2분기 이후 줄곧 1위다. 2위 에릭슨과 격차는 10%P 이상으로 벌어진 상태다.

화웨이는 전체 RAN 시장에서도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32.8%로 직전 대비 1.8% 상승했다. 특히, 롱텀에벌루션(LTE) 장비 시장에선 에릭슨을 끌어 내리고 1위 자리에 오르는 등 시장 전 영역에서 독주체제를 갖췄다.

미국 제재에도 화웨이가 시장점유율을 크게 잃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중국 시장 영향이 크다. 안방을 지지대로 안정적 시장점유율을 이어가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미국 제재 효과가 사실상 신통치 않다. 유럽 등 주요 거점에서 시장점유율 하락 징후가 없다.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선 화웨이 장비 배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이 대두되는 분위기다.

독일 도이치텔레콤은 5G 네트워크로 업그레이드를 위해 기존 장비 공급 업체인 화웨이와 에릭슨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이치텔레콤은 5G는 기술적으로 독립형 네트워크가 아니고 현재의 4세대(4G) 네트워크에 새로운 기능과 기술적 특징이 더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4G 장비를 공급한 업체와 다른 5G 장비 공급 업체를 선정해 5G 네트워크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텔레2도 화웨이 장비를 기반으로 5G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 등 주요 도시에 서비스 제공을 시작했다. 스웨덴 에너지 디지털 개발부의 안데스 이게만 장관은 화웨이 장비를 채택했지만 보안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4G에도 화웨이 장비를 사용했으며, 보안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미국 최우방국 가운데 하나인 캐나다에서도 화웨이 장비 도입 허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직까지 화웨이 장비 도입에 대한 공식 입장을 결정하지 못했지만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기가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캐나다의 대표 통신사 벨 캐나다는 5G 구축을 위해 여러 공급업체와 협력하고 있으며, 정부만 허락한다면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5G 네트워크 구축 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기존 4G 이동통신 네트워크와 호환 및 비용 문제 때문이다. 영국 보다폰의 스콧 페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통신사가 기존 장비를 교체하는 데 시간과 돈을 소비해야 한다면 영국의 5G 리더십은 사라질 것”이라며 “화웨이 장비의 완전한 배제는 수십억 파운드에 이르는 비용 지출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BT, 보다폰, 쓰리 등 영국 통신사는 화웨이 장비에 기반한 5G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의회는 최근 보고서를 발간하며 화웨이가 영국에서 금지될 경우 영국 경제에 약 45억파운드에서 68억파운드에 이르는 경제적 타격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경에서 발생한 무력분쟁으로 중국에 대한 불만 여론이 높은 인도에서조차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기가 어렵다는 현실론이 제기된다.

인도 통신장비 시장은 약 2조원 규모로 중국 장비사의 점유율은 약 25%이다. 인도 통신업계는 중국이 아닌 유럽 장비를 사용할 경우 구매 비용이 15~20%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보다폰 아이디어와 바르티 에어텔이 기존 중국 장비 계약을 취소하고 향후 거래를 금지할 경우 각각 6억5000만달러와 3억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화웨이 무기는 '5G 기술 주도권'

5G 시장에서 화웨이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표준 제정 등 기술 영향력 측면에서 화웨이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때리기 실효가 약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화웨이는 세계 최초로 5G 기지국 장비에 대한 국제 보안 CC(Common Criteria) EAL4+인증을 받았다. CC 인증을 획득한 화웨이 기지국 장비는 5G 기지국 구축에 쓰이는 메인 제품으로, 한국을 포함한 세계에 공급되는 장비다.

화웨이는 5G 기지국 장비 보안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5G 무선 접속망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보안 보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입증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아가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 국가 정부와 국회가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보안 우려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되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A(Strategy Analytics)는 이동통신표준화기술협력기구(3GPP)의 5G 표준 정립 기여도 분석을 통해 화웨이의 기여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했다. SA는 화웨이, 에릭슨, 노키아 등 13개 기업을 대상으로 3GPP의 5G 표준인 '릴리즈15'와 '릴리즈 16' 정립 과정에 대한 기여도를 분석했다. SA에 따르면 표준화 정립에 대한 기여도는 5G 리더십의 핵심 지표다.

5G 특허 경쟁력에서도 경쟁사 대비 우위다. 독일 아이플리틱스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의 5G 표준특허 건수는 3325건(특허선언 기준)으로 세계 1위다. 특허선언은 표준특허와 관련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표준화 기구에 신고하는 절차를 말한다. 특허 선언이 표준필수특허의 법적 근거는 아니지만 기업 경쟁력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상황만 놓고 보면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 효과는 더욱 미미해질 가능성이 짙다. 오히려 미국에선 화웨이 제재로 5G 표준 제정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자국 기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 상원은 상무부와 국무부·국방부·에너지부 등에 서한을 보내 화웨이 제재로 미국의 5G 기술표준 참여가 제약돼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국방부는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하고 규제를 강화한다는 상무부 의견에 반대했다. 제재를 강화하면 오히려 미국 업체가 핵심 수익원을 잃게 되면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도 현실적 선택을 했다.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와 5G 통신망 관련 '기술표준' 협력을 허용하는 새로운 규정에 서명했다. 화웨이가 회원사로 참여하는 기술표준 기구에 자국 업체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엔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 조치 강행으로 화웨이가 회원사로 참석하는 국제 표준 수립 회의에서 미국 기업이 어떤 기술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했다.

이 조치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제재 전략이 추동력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애초 화웨이와 직접적으로 경쟁할 대항마가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제재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맞는 상황이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