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늘어나는 메이드 인 코리아 'AI 닥터'

[이슈분석]늘어나는 메이드 인 코리아 'AI 닥터'

의료는 인공지능(AI) 기술 도입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분야 중 하나다. 의료 패러다임이 표준적·경험적 치료 중심에서 질병 사전 예측, 예방, 개인맞춤형 치료로 변화하면서 AI 중요성이 날로 커진다. 의료 AI는 기계학습으로 빅데이터를 학습하고 특정 패턴을 인식해 질병을 진단·예측하거나 맞춤 치료방법을 제안한다. 그 중에서도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내시경 등에서 생성된 영상을 판독해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개발이 활발하다. 진단 시간이 짧고 더 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영상의학과 전문의 부족과 판독 일관성 확보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영상 진단을 보조하는 국산 AI 의료기기가 크게 늘고 세계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글로벌로 진출하는 한국산 AI 닥터

메디컬아이피는 전 세계 코로나19 대유행 조짐이 보이자 흉부 CT 영상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폐렴 병변을 1분 내 정량화하는 SW '메딥 코비드19'를 개발해 지난 3월 전 세계에 무료 배포했다. 40개국 이상에서 1000개 이상 기관이 이를 내려 받아 사용하고 있다. 뷰노, 루닛, 피노맥스 등 국내 의료 AI 전문기업도 흉부 엑스레이나 CT 영상에서 코로나19 의심 소견을 판독하는 솔루션을 무료로 공개하면서 국내외 병원이 활용하고 있다.

각종 국제 인공지능 대회에서도 글로벌 유수 업체를 제치고 최상위권에 오르며 기술력을 증명하고 있다. 루닛은 2016년 의료영상처리학회(MICCAI)가 개최한 유방암 환자 영상에서 종양 확산 정도를 분석하는 이미지인식 경연대회에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IBM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뷰노는 최근 세계 인공지능 판독 대회 주요 과제에서 1위를 기록했다. 지난 2018년에도 당뇨망막병증 판독 챌린지 주요 항목에서 1위를 차지하고 세계 권위 의료영상기술학회(MICCAI) 녹내장 진단 성능 대회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정부가 3년간 364억원을 투자해 개발하는 의료 AI 플랫폼인 '닥터앤서'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보건부 산하 6개 병원 진료에 적용하는 교차 검증을 추진하며 글로벌 진출 첫 발을 뗐다. 한국인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된 닥터앤서가 인종과 생활습관이 다른 해외 환자 진료와 진단에 적용돼 안전성과 임상효과가 검증된다면 글로벌 진출을 위한 범용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수한 데이터 토양에 선도적 규제 환경도 영향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국내에서 허가를 받은 AI 의료기기는 총 15개 회사 36개 제품이다. 지난 2018년 뷰노의 골연령 진단보조 제품 '뷰노메드 본에이지'가 국내 최초 AI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이후 허가 건수가 매년 2배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 기술 역량과 특수한 의료 데이터 토양이 시너지를 낸 결과로 분석한다. 관련 투자도 집중되며 의료 AI 분야에 신규 진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한 업계관계자는 “의료 AI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인데 우리나라는 특정 병원에 집중적으로 데이터가 모여 있어 업체 입장에서는 빅5 병원과 협업하면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서 “2000~3000 병상을 갖춘 상급종합병원이 서울에 집중돼있고 전국에 있는 희귀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병증의 환자들이 이곳으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AI 개발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환경이 조선돼있다. 식약처는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총 6개의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다양한 AI 의료기기를 허가할 수 있는 밑바탕을 갖췄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연합 등에서는 AI 의료기기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따로 정의하고 있지 않다.

◇개발 넘어 활용으로 병원 확산 과제

AI 의료기기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병원에서 환자 진료에 활용해 임상에 적용돼야 의미가 있다. 업체 입장에서도 이를 통해 매출을 발생시키고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과제다. AI 성능 개선과 더불어 수가 도입, 병원과 의료진의 인식 제고 등이 숙제로 꼽힌다.

업계는 AI 의료기기에 대한 수가 도입을 지속 건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AI 등 혁신 의료기술에 대해 건강보험 등재를 검토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전 세계 최초로 방향성을 제시한 측면에서는 고무적이지만 실제 수가 지급이 이뤄지려면 의료진과 이해 상충, 책임 소재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적지 않다.

김현준 뷰노 대표는 “아무리 혁신적인 기기라도 보험급여 체계에 편입돼있지 않으면 일선 의료기관이 도입하기 어렵다”면서 “영상 판독 수가를 세분화해서 AI 판독에 대한 가산 수가가 도입된다면 확산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도입하기에 충분한 성능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솔루션별로 특정 병변만 검출이 가능한데다 판독 오류 가능성도 있어 의료진이 이를 다시 검토하려면 판독에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AI가 의료진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판독 오류도 줄일 수 있다는 신뢰가 확산된다면 병원에서도 도입할 유인이 충분하다.

업계관계자는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첨단 기술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AI는 보조 수단일 뿐이고 실제 의료진이 불편한 점이 무엇이고 이를 AI를 활용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병원과 상생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AI가 자원 절감과 휴먼 에러 감소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병원에 주는 이익이 확실하다면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