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동대문 클러스터가 이끄는 '디지털 뉴딜'

[ET단상]동대문 클러스터가 이끄는 '디지털 뉴딜'

동대문 시장은 연간 거래액 15조원에 이르는 국내 패션 산업의 거점이다. 시장 형성 이래 수십년 동안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동남아시아 바이어에게도 동대문 시장의 디자인과 상품 제작 능력을 높게 평가받고 있는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패션 클러스터이자 국내 최고 패션 메카로 떠올랐다.

그러던 동대문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오프라인 대형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혁신에 다소 둔감하던 동대문 시장이지만 운영 주체 세대가 교체되고 있다. 점차 수기 영수증과 종이 장부보다 모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익숙한 세대가 늘고 있다. 동대문 시장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이들에게 이는 실로 놀라운 풍경이다.

중국 광저우 패션 도매시장의 부상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이른바 '큰손'(대형 바이어)들이 광저우로 빠지자 도매상인들은 내수시장에 집중했다. 새로운 판로 개척 및 유통 효율을 위해 소비자(B2C), 기업(B2B) 간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용이 늘었다. 이때 브랜디와 같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적기에 제 역할을 했다.

동대문 시장의 경쟁력은 엄청나다. 하루 1만점 이상의 신상품을 출시할 수 있는 공급 능력을 갖췄다. 이는 유명한 세계 패스트 패션 기업 자라보다 빠르고 크다. 원단-봉제-디자인-패키징이 모두 한곳에서 가능한 최고의 공급처이자 일일 평균 수십만건의 직판매까지 이뤄지는 '글로벌 패션 클러스터'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동대문 시장의 경쟁력을 무기로 세계무대에 서려면 '동대문 시장 데이터화'는 필수다. 동대문 시장에서는 매일 3만5000건의 거래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 기록은 축적되지 않는다. 각 도매상인이 점조직 형태로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자라가 세계 최고의 SPA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은 단연 정보의 데이터화다. 이들은 상품 출시, 유통, 판매 등 전 과정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진행한다. 미리 유행을 추측해서 상품을 디자인해 손실을 줄이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매 전략 정책을 펼친다.

물론 동대문 시장의 경우 단일 도매업체 사장의 경험과 직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개개인으로 이뤄진 도매상인들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가공하는 일은 현실에서 어려움이 많아 자라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의 직접 경쟁은 쉽지 않다. 브랜디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이에 대한 책임 의식을 발휘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동대문 시장 내 상인과 기업의 협력을 넘어 국가와의 협력도 필수다. 현대자동차와 울산 자동차 클러스터 사례처럼 국가의 전폭 지원은 지역 및 나라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세계에서 K-팝, K-뷰티, K-패션의 인기가 뜨겁다. 이제 'K'라는 브랜드가 미치는 영향력은 1980~1990년대 세계를 놀라게 한 제조업의 명성을 넘어섰다. 특히 세계로 나가는 K-패션 대다수는 동대문 시장발 상품이 중심이다. 다시 한 번 그 발원지인 동대문 시장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지난 7월 발표된 정부의 한국판 뉴딜정책은 무척 반갑다. 급변하는 글로벌 패션 산업 속에서 '동대문'이라는 패션 브랜드가 우뚝 서기 위해 정부 지원은 필수다. 때마침 동대문 시장이 IT 기업과 협력해 '데이터화, 플랫폼화, 온라인화'라는 이름으로 혁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들의 협력이 동대문에 또 다른 동력이 되길 기대해 본다.

서정민 브랜디 대표 seojm@brand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