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빅데이터와 대안신용평가

[ET단상]빅데이터와 대안신용평가

신용공여. 돌려줄 것을 믿고 남에게 일정 기간 자신의 것을 빌려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되면 손해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공급자는 빌려주기에 앞서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사람이 경험과 숙련된 지식에 의해 심사하고 판단했다. 그런데 숙련된 심사역이 무한정 확대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이 처리하다 보니 효율도 별로 없었다. 여러 정보를 살펴보며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판단하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도 했다. 또 공급자가 공여한 신용의 얼마만큼을 진짜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해 온 것이 신용등급이다.

신용등급은 담보가 없는 사람에게 신용을 공여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서 무담보 대출 시장을 확대했고, 신용카드·할부 등 다양한 금융이 가능하게 했다.

이제는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에서 상거래 내용을 비롯해 통신-전기 서비스 사용 내용과 공간의 임대차, 더 나아가 서비스를 사용하는 패턴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모바일 등 디지털 환경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중신용자 또는 신파일러(금융 이력이 부족한 사람들) 신용을 평가하는 등 신용평가 사각지대를 줄여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부응하고 데이터의 안전한 활용을 통해 혁신을 끌어내기 위해 지난 1월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 이달 초 발효를 앞두고 있다. 개인 정보는 정보 가치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 문제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서 안전하게 활용해야 한다.

이보다 집중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정보를 활용해 더 넓은 영역의 의사결정을 자동화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효율 높게 경제 가치를 만들어 내고, 사회 가치와 균형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가 문제일 것이다. 예를 들어 담보가 없는 사람과 금융 거래를 하기 위해 발명된 신용등급이 만일 담보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신용이 낮은 사람과의 거래를 제한(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됐다면 어떻겠는가. 실질 담보는 있지만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특정 직업인 가운데 자동이체를 하지 않아서 요금 납부가 몇 번 늦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금융 거래는 제한됐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 합리 타당하고 정교하게 판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반복되면 특정 세그먼트에 대한 차별을 고착시키는 사회 제도로 자리 잡게 된다. 즉 더 많은 데이터가 공급되면서 선택권이 충분한 사람에게는 더욱 편리한 서비스가 제공되겠지만 신용을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은 날로 복잡해지는 데이터 융합 속에서 금융에 접근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부족한 곳과 여유 있는 곳을 연결해서 세상을 더 활력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금융의 사회 책임을 더욱 무겁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분석하는 모든 데이터는 과거에 일어난 일의 일부일 뿐이다. 완벽한 데이터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데이터 분석에는 분석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주변의 시스템이 자동화 처리되는 일 대부분은 지난날 사람이 하던 일이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춰 모든 분야가 효율화되고 생산성이 증가했듯이 현재 사람이 하고 있는 일들도 미래에는 더욱 자동화로 이뤄질 것이다. 그 자동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료는 빅데이터이지만 그 빅데이터를 올바른 방향성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김민정 크레파스솔루션 대표 mj@crepa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