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프로그램 사용료 인상 없이 콘텐츠 한류 불가능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1995년 유료방송 시작 이후 케이블TV, 위성방송, 인터넷(IP)TV는 꾸준히 성장해 2020년 방송가입자가 약 3000만명을 넘어섰다.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도 170여개 법인으로, 총 230여개 채널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 PP 프로그램 제작비는 2015년 1조4400억원에서 2019년 약 2조원으로 30% 가까이 늘었다.

또 한국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2016년 기준 7위를 차지했다. 총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2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여타 산업과 비교하면 국내 콘텐츠 산업 경쟁력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콘텐츠 제작 국가로 떠오르고 있지만 콘텐츠에 대한 제대로 된 대가가 따르지 않아 국내 콘텐츠 시장의 밝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PP는 플랫폼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시청자에게 콘텐츠를 제공할 수 없고, 플랫폼은 PP가 제공하는 콘텐츠 없이 가입자를 유치할 수 없다. PP와 플랫폼은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그만큼 플랫폼과 PP 간 콘텐츠 사용료 배분 기준은 매우 중요하고 예민하다. PP 콘텐츠 사용료 수입은 플랫폼과 PP가 공동 노력해서 얻은 유료방송 산업 전체 부가가치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현재 콘텐츠 사용료는 플랫폼과 PP 간 개별 협상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대부분 합리 타당한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되고 있다. 여기에 공공재 성격이 강한 지상파까지 협상장에서 큰 힘을 발휘, 콘텐츠 사용료 시장 원칙이 무너지고 혼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플랫폼은 PP와 콘텐츠 사용료 계약 때 자사 수익과 연관 지어서 협상하려 한다. 콘텐츠별 가치를 인정해 사용료를 지급하는 게 아니라 플랫폼 매출 증감에 따라 콘텐츠 사용료를 조정하려는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무시되면 결국 볼 만한 콘텐츠는 사라지게 된다. 국내 PP 프로그램 사용료 수익은 전체 프로그램 투자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니 PP 입장에서는 제작비라도 만회하기 위해 간접광고(PPL) 유치에 적극 임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자연스레 콘텐츠 스토리에 간섭이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PP 콘텐츠 투자 비용 대비 프로그램 수신료 수익은 약 120% 수준이다.

우리나라도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 조성을 위해 PP는 투자를 늘려서 히트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에 합당한 콘텐츠 대가를 받아 다시 콘텐츠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콘텐츠업계의 현실은 여러 PP가 과거 지상파 인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재유통하며 수익을 내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 미디어 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하고 있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플랫폼과 PP 콘텐츠 사용료 분쟁 해결을 위한 콘텐츠 가치 책정 합리화 등 가이드를 마련해야 할 때다. 그것이 한류 콘텐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첫걸음이다.

플랫폼 사업자도 콘텐츠가 유료방송 사업에 절대 필요한 핵심 자원이라는 마인드로 정당한 콘텐츠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고객 유치를 위한 유료방송 수신료 할인이나 마케팅 활동은 각 플랫폼 사업자가 결정할 일이다. 그러나 가격 경쟁으로 인한 수익 증감을 콘텐츠 사용료와 연동해서 지불하려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그래야 TV에서 볼 만한 드라마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나아가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 전자IT미디어공학과 교수 ssjchoi@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