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코로나19와 화학사고 대응의 공통점

[ET단상]코로나19와 화학사고 대응의 공통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은 수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비극이다. 세계 각국에서 허둥댔다. 준비가 부족했다. 한편 이번 재난에 임하는 정부의 대응이 인상 깊다. 완벽하진 않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해 우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배경으로 유사한 과거 경험이 도움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신종플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을 통해 범국가 차원의 전염병에 대한 경험치가 쌓였고, 유사 질병에 대한 준비 태세가 견고해졌다. 질병관리본부의 탄생과 성장이 좋은 예다. 코로나19가 이대로 진정된다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다음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화학물질인지도 모른다.

대규모 화학사고 또한 국가 재난이다. 정부 차원의 대비·대응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2012년의 경북 구미 불화수소 누출 사고는 많은 교훈을 남겼다. 먼저 주무 부처가 불분명했다. 화학사고 전문가가 부족했고, 대응 매뉴얼도 허술했다. 사업장 화학물질 관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교육은 부족했고, 인식은 안일했다. 그 결과 23명의 사상자와 수천억원의 금전 피해가 났다.

이후 정부는 화학사고 대응을 환경부로 일원화하고 2014년 화학물질안전원을 설립하는 등 준비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2015년에는 화학물질관리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이 시행되는 등 더욱 강화된 관리제도가 마련됐다. 허술하던 대응 체계와 매뉴얼도 점차 개선되는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업장과 취급자에게도 긍정 변화가 일어났다. 교육이 강화됐고, 인식이 바뀌었다. 작은 부주의와 실수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게 됐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건 너무나 자명하다. 그럼에도 사고에 대한 준비와 대비는 어렵고 힘들다. 그에 상응하는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여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은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가 달가울 리 없다. 절차가 복잡해지고, 관리는 강화됐다. 사업장 안전 체계 구축에 많은 시간, 비용, 인력이 요구됐다. 투자 효과가 분명치도 않고, 알아주는 이도 없는 듯하다. 제도 개선 및 완화의 목소리가 슬그머니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제도 완화에 대해선 회의 분위기이다. 최근 싱가포르와 일본에서 경험한 코로나19 재확산을 보면 더욱더 그렇다. 안전해 보이는 상황은 자칫 섣부른 이완을 야기한다. 안전은 긴장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져 있었고 약간의 이완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위험은 항상 허술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무리 튼튼한 둑도 손가락 크기의 구멍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화학사고에 대한 안전 체계는 정부와 사업장 두 축으로 하여 함께 견고해져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라도 이완되고 구멍이 생기면 다른 한쪽의 단단함도 무용지물이 된다. 다만 한쪽의 어려움엔 귀를 기울여서 도와야 한다. 영세한 사업장과 취급자들은 행정·재정 도움이 절실하다. 관리제도 강화는 당근책이 있을 때 그 빛을 발한다. 안전 체계를 갖춘 사업장은 존경과 칭찬을 받아 마땅하며,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과감한 지원과 혜택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군 복무 시절에 잠 많던 청년에게 불침번 근무는 항상 불만의 대상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산골에 누가 온다고 그 추위에 벌벌 떨면서 불침번을 서야 하는지. 그럼에도 준비 태세를 취하는 건 국가 재난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침입 확률이 낮더라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고 불침번을 고수하는 이유다.

대규모 화학사고도 국가 재난이다. 귀찮고 고통스러운 준비 태세는 우리가 감수해야만 하는 비용이다. 인간의 생명과 환경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어찌 그 비용이 크다고 할 것인가.

전준호 창원대 토목환경화공융합공학부 교수 jjh0208@ch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