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트렌드]제품력 상향평준화 시대, 디자인에 공들이는 유통업계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2018년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는 124조3000억원으로 2017년(117조3000억원) 대비 5.9% 증가했다. 디자인은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해 제품에 호감을 갖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구매까지 연결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에서 제품 디자인의 경우 26.3%로 고객 서비스(28.31%)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동일한 조사에서 성능을 중요시 여긴다는 비중이 16.6%에 그치는 것을 보면 소비자들의 구매 행동에 디자인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자인은 경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제품력이 상향 평준화된 현대 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다. 비슷한 가격대에서 제품 성능의 차이가 크지 않을 때 디자인이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승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내수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생활용품, 식품, 문구 등의 유통업계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을 위한 디자인 전략 수립에 열심이다. 기존 시장에 없던 심플한 디자인('S'imple)을 내세우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유명 브랜드의 원조 디자인('O'riginal)을 접목하거나, 기업 초기 도전정신('S'pirit)을 담는 등 불황의 시대에 맞서 디자인에 SOS를 치고 있다.

습기의 영혼까지끌어 모으는 제습제
습기의 영혼까지끌어 모으는 제습제

◇디자인('S'imple) '생활공작소 제습제'

'합리적 소비를 위한 미니멀리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생활용품 전문 브랜드 생활공작소는 가격, 성분, 디자인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에서 소비자들이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구입할 수 있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주변 인테리어와 잘 어우러지는 깔끔한 디자인을 추구하는데 생활용품 업계에서는 드물게 모던한 패키지 디자인을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습기의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제습제'는 2016년 출시 당시 기존 시장에는 없었던 까만색 뚜껑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크게 탄 제품이다. 옷장, 서랍장 내부 등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사용하는 제습제도 예뻐야 한다는 디자인 철학 아래 분홍색 뚜껑 등 튀는 컬러 대신 블랙&화이트 톤의 심플한 패키지를 개발해 출시했다.

셀프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2030 세대를 중심으로 SNS에서 큰 호응을 일으켜 생활공작소 브랜드가 성장하는 발판 역할을 했으며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 1300만개를 기록, 생활공작소 대표 제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외에도 생활공작소는 주방 및 청소용품, 욕실용품 등 일상 전반에 꼭 필요한 60여종 제품들을 모노톤의 심플한 디자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생활공작소 관계자는 “브랜드와 제품이 범람하고, 제품력은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시대에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는 제품은 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며 “생활공작소는 블랙&화이트의 참신한 디자인으로 생활용품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바 있어 앞으로도 소비자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생활 전반의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U 곰표 밀맥주
CU 곰표 밀맥주

◇원조 디자인('O'riginal) CU '곰표 밀맥주'

편의점 CU가 지난 5월 소맥분 제조사 대한제분, 수제맥주 제조사 세븐브로이와 함께 출시한 '곰표 밀맥주'는 출시 3일 만에 초도 생산물량 10만개 완판, 일주일 만에 누적 판매량 30만개 돌파를 기록했다. 맥주 시장은 취향 소비 성향이 강해 진입 장벽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대한제분의 오리지널 곰표 밀가루 포대를 연상시키는 패키지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 것이 성공 요인이 됐다.

곰표 밀가루의 마스코트인 표곰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 캐릭터 디자인도 곰표 맥주가 돌풍을 일으키는데 한몫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MZ 세대들은 물론 복고 디자인에 향수를 느낀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품귀 현상을 빚는 등 상반기 가장 인기를 끈 맥주 중 하나로 꼽혔다. 곰표 밀맥주 흥행 후 CU는 최근 네이버 웹툰 인기 작품 호랑이형님의 인기 캐릭터와 콜라보한 '무케의 순한 IPA'까지 출시했다.

모나미153 네온
모나미153 네온

◇도전정신('S'pirit) '모나미 153'

모나미가 1963년 국내 자체 기술로 만들어낸 국내 최초의 볼펜 '모나미153'은 합리적인 가격과 실용성 덕에 지금까지도 국민 볼펜으로 불리고 있다. 육각 형태의 보디와 검은색 헤드, 노크(똑딱이) 등 꼭 필요한 부품으로만 구성된 단순한 구조의 디자인은 출시 이후 현재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모나미는 국내 최초의 볼펜을 개발했던 기업 초기의 도전정신을 이어받아, 헤리티지 디자인을 최신 트렌드에 맞춰 새롭게 재해석한 신제품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며 문구 덕후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4년 모나미153 발매 50주년을 맞아 선보인 '153 리미티드 에디션'은 고급 메탈 보디와 독일산 심을 적용해 1만개 한정으로 출시한 프리미엄 제품으로 판매 1시간 만에 품절된 뒤 중고시장에서 웃돈을 붙인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소재 또는 컬러를 입힌 '153 시그니처 시리즈'도 선보이고 있는데, 최근에는 여름을 맞아 매트한 질감의 무광 메탈 소재에 라임 및 오렌지 네온 컬러를 그라데이션한 '모나미153 네온'을 출시한 바 있다.

이주현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