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맥질환, 가볍게 여겨서는 안돼

박상우 건국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박상우 건국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겁고 부종이 일정 기간 휴식을 취한 뒤에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정맥질환을 의심해 봐야 한다. 정맥이 제대로 순환하지 않으면 혈액이 다리에 고이고 끈적끈적하게 뭉치는 혈전으로 발전한다. 이 혈전은 여름철 기온이 올라갈수록 혈액의 점도가 더 올라가 심해진다. 혈전이 동맥에서 생기면 심장병과 뇌졸중 등을 유발하지만 정맥에 생기면 심부정맥 혈전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동맥질환에 비해 정맥질환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방치하다 심화하면 다리가 괴사, 절단해야 하거나 합병증으로 갑작스러운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대표 정맥질환인 심부정맥 혈전증은 주요 정맥의 혈류가 혈전으로 말미암아 막히게 되는 것이며, 하지정맥류는 주로 정맥 내 판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하지정맥류는 말 그대로 정맥이 튀어나오는 상태이지만 그 외 다리가 자주 붓고 아프며, 쥐가 나는 듯한 느낌이나 다리가 터지는 것 같은 압통을 겪게 된다. 심하면 피부가 울퉁불퉁해지거나 궤양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정맥류를 흔히 노화에 의한 증상으로 여기기 쉽지만 장시간 서서 일하거나 앉아서 일하는 현대인 특성상 최근에는 40대 이하 젊은 층 환자 비율도 30% 가까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정맥류는 주로 판막 이상으로 발생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상부 정맥이 막히거나 좁아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맥 전체 상태 확인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정맥류보다 심각한 정맥질환이 심부정맥 혈전증이다. 혈액은 여러 장기를 순환한 후 정맥을 통해 다시 심장으로 돌아간다. 이들 정맥 가운데 근육 깊은 곳에 있는 심부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질환이 심부정맥 혈전증이다. 심부정맥 혈전증은 외상과 수술을 겪거나 오랜 기간 부동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 임신·복합 경구 피임제 복용, 유전 요인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인구 고령화, 식습관 서구화, 수술과 암 환자 증가 등 영향으로 환자가 증가세에 있다.

심부정맥 혈전증은 60세 이상 고령층이 고위험군으로 꼽힌다. 혈전이 폐혈관으로 이동해 폐색전증으로 이어지면 호흡곤란·실신·청색증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자칫 갑작스러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어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정맥류와 심부정맥 혈전증 모두 초기에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생활습관 교정, 압박스타킹 착용 등 보존성 치료를 시행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보존성 치료로 효과가 없거나 증상 심화로 일상생활의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는 인터벤션 치료와 같은 방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정맥질환이 가벼운 병이 아님에도 생소하게 느끼기 쉬운 이유는 지난날 질환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터벤션 치료 방법도 보편화하지 않는 등 진단과 치료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의료 기술 발전으로 이러한 부분이 개선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맥질환 치료에 적합하게 설계된 스텐트가 출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과거에는 정맥 구조에 맞는 스텐트 제품이 없어서 동맥 및 정맥 협착에 구분 없이 동일한 말초혈관 스텐트를 적용했다. 그러나 정맥 전용이 아니다 보니 중장기 치료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정맥질환 구조와 모양에 맞는 전용 제품이 출시되면서 앞으로는 정맥 혈관이 막혀서 스텐트 시술이 필요한 경우 그에 맞게 설계된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외관으로 다리 혈관이 튀어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해선 안 된다. 다리 부종과 저림에 열감까지 일정 기간 지속된다면 하루빨리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치료가 늦어질수록 피부궤양 이 생길 수 있고, 더 나아가 심하면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박상우 건국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psw0224@ku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