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完全社會]바로 지금 멋지게 해야 할 일

[SF 完全社會]바로 지금 멋지게 해야 할 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중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언제 읽어도 매혹적이지만, 요즘처럼 전염병 재난을 피해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때는 더더욱 꺼내읽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우주여행이 보편화되었지만 여전히 곳곳에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소설은 통제 불가능한 외계 기생생물 포자가 야기할 재난을 막아내기 위해 힘을 합치는 두 모험가의 고군분투와 우정을 그린다.

동족 몰래 통신관에 올라타고 우주 공간으로 모험을 떠난 어린 기생생물 실료빈은, 자신처럼 몰래 우주선을 몰고 나온 대담한 인간 소녀 코아티 캐스의 머릿속에 우연히 자리를 잡는다. 생물학적으로는 지극히 멀지만 동시에 너무나 닮은꼴인 두 인물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 벅찬 우주여행을 함께하는 최고의 친구이자 동료가 된다.

그런 둘을 위협하는 최대의 난관은 얄궂게도 실료빈이 속한 '이아' 종족의 생물학적 본능 그 자체. 동족으로부터 번식 본능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어린 '이아'는 이성을 잃고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방으로 감염성 포자를 뿌리고 만다. 이대로 우주선을 기착지까지 몰고 갔다가는 외계 기생생물의 대유행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 시시각각 다가오는 재난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코아티와 실료빈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팁트리 주니어는 육체적 욕구에 휘둘리는 생명체의 이야기를 중요한 글감 중 하나로 삼은 작가다. 이를테면 작가의 대표작이자 페미니즘 SF의 고전 '체체파리의 비법'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욕이 살의로 뒤바뀌는 기이한 증상이 등장하며, '사랑은 운명, 운명은 죽음'이나 '덧없는 존재감' 등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등장인물은 불길처럼 치솟는 생물학적 충동에 정말이지 온갖 방식으로 휩쓸리고 또 휩쓸린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에서는 조금 다르다. 비록 실료빈 또한 기생생물 종족의 무자비한 번식 본능에 사로잡힌 신세라는 점에선 다른 단편의 등장인물과 매한가지 신세이지만, 실료빈은 작품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밀어 오르는 본능에 굴복하지 않고 어떻게든 맞서 싸우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실료빈의 내면에서 일어난 작은 승리는 곧 외계 전염병으로 인해 펼쳐질 재난을 막아내는 영웅적 업적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이 특히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잔혹한 생물학 원리가 지배하는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 세계에서 실료빈만은 절대적인 것처럼만 보였던 생물학적 장벽을 뛰어넘어 인간과 친구가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파괴적인 본능으로부터 친구의 동족을 구해내는 데에도 성공하는 것이다.

실료빈의 승리는 우리의 현실을 파먹어가는 다른 한 가지 종류의 고약한 전염병에 대한 승리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간과 외계생물이 아득히 다른 몸의 형태를 초월해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며 동료애를 쌓는 동안, 현실에서는 그보다 훨씬 사소하기 그지없는 생물학적 차이를 핑계 삼아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억압하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백주대낮에 살해당한 사건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와 범죄는 하루라도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날이 없는 지경이고, 그런 와중에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국회 청원은 무려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내기까지 했다. 이 모든 사회병리적 현상의 뿌리 근처에는 인간과 동물, 여자와 남자,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나누는 데에 골몰하여 온 근대 과학자의 '차이의 생물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차이의 생물학'은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합리화하는 지리멸렬한 논거로서 지금껏 기능해 왔으며, 때로는 오로지 타자를 짓밟기 위해 만들어진 악랄한 사상의 밑받침이 되어 주기도 했다.

소수자를 멸시하고 해치며 끊임없이 주변부로 밀어내는 사회의 압력은 팁트리 주니어의 또 다른 주요 글감이기도 했다. '별의 눈물'이나 '돼지 제국' 등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은 비단 움직이지 않는 생물학적 원리로부터만이 아니라 작중 사회를 지배하는 차별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또한 고통 받는다. 그렇기에 숙주의 몸속에 자유로이 파고들 수 있는 이아 종족의 생태에 대해 알게 된 코아티가 “너희들은 온 연방을 돌아다니며 아픈 사람들을 찾아가 치료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모두가 너희들을 사랑할 거”라며 기뻐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 속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독자들에게 더더욱 각별한 울림을 선사한다.

SF는 재난을 그리기에 적절한 장르이고, 그렇기에 어떤 작품은 다가올 재난에 대한 사실적인 예언이나 경고로 읽히기도 한다. 팬데믹과 차별과 혐오의 몇 겹 재난에 직면한 우리에게는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이 있다. 비록 우리는 생물학적 원리의 냉엄한 장벽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고, 또 서로의 아주 사소한 차이를 트집 잡아 유사 이래 끊임없이 서로를 해쳐 온 존재이지만, 그 모든 차이와 편견을 넘어서는 연대의 가능성이 이 단편 속에는 있다. 두 우주 모험가의 영웅적인 “마지막으로 멋지게 할 만한 일”은 그렇기에 우리가 바로 지금 멋지게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산화, 소설가
GIST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물리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온라인 연재 플랫폼 브릿G에서 '아마존 몰리'가 2017년 2분기 출판지원작에 선정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증명된 사실'로 2018년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집 '증명된 사실'과 사이버펑크 장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로 SF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최근 액션 스릴러 장편 '밀수'를 발표했다.

이산화 소설가
이산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