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융합망' 외산 장비 독식?...우려가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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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백본망 구축 사업' 형평성 논란
'효율성보다 안정성' 까다로운 조건 요구
BOD 기능 등 외산 제조사만 제공 가능
"민간사업 문제 없는데…공공서 외면" 지적

국가융합망 백본망 전국망 개념도
<국가융합망 백본망 전국망 개념도>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국가 융합망 백본망 구축 사업'이 외산 장비 독무대가 됐다. 행안부가 제시한 사업제안요청서(RFP) 제품 요구 사항에 따르면 국산 장비 진입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국산 장비업계의 우려가 현실화했다.

〈본지 8월 18일자 1면 참조〉

전자신문이 국가 융합망 백본망 구축 사업 입찰에 참여한 사업자 제안서를 확인한 결과 전송 및 네트워크 장비가 모두 외산 장비로 구성됐다.

1·2망 사업을 수주한 통신사 모두 백본망 핵심 장비인 재설정식광분기다중화장치(ROADM)와 캐리어 이더넷 방식의 패킷전송망(PTN)으로 미국 시에나 제품을 채택했다.

라우터·스위치 등 네트워크 장비 또한 주니퍼 네트웍스 등 모두 외산 제품을 택했다.

이 밖에 입찰에서 탈락한 사업자도 모든 장비를 외산으로 구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사업에서 전송·네트워크 장비가 국산·외산 장비가 통용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통신 및 장비 업계는 행안부가 과도한 장비 기준을 요구한 결과로 분석했다.

국가 융합망 사업은 정부 각 부처가 개별·운영하는 정보통신망을 통합하는 사업으로, 총 사업비가 820억원(1망 541억원, 2망 286억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이다. 애초 국산 장비업계의 수혜가 기대됐지만 막상 RFP가 공개되자 국산 장비 진입이 원천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행안부가 사전 규격에서 일부 외산 장비가 공급하는 기능을 필수 제안 항목으로 제시하는 등 실제로 국산 장비 진입이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다.

사전 규격에서 요구한 주문형대역폭할당(BOD) 기능은 ROADM이나 PTN 등을 연계해 대역폭을 조정하는 기능으로, 외산 제조사 장비만 제공 가능한 기능이다.

이후 RFP에 BOD라는 문구를 삭제했지만 '주문형 대역폭 할당 기술'이라는 번역 용어로 대체, 요구 사항을 종전처럼 유지했다. 이뿐만 아니라 RFP에 이례적으로 장비군·용량 등을 자세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사업자 입장에선 국산 장비를 투입할 부분도 필요 이상 스펙의 외산 장비를 선택할 여지가 충분했다.

행안부는 국산 장비를 차별하는 조항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려가 현실화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융합망 사업에서 효율성보다 안정성에 치중하면서 기존 민간 사업 대비 훨씬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다”면서 “RFP에서 일부 장비는 사실상 외산 장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제시, 사업자가 모두 외산 장비로 제안서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트워크 장비 업계 관계자는 “행안부가 RFP에서 요구한 인증을 획득한 국산 네트워크 장비는 아직 없다”면서 “민간 사업에서 문제없이 사용되는 국산 장비가 공공사업에선 외면받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