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체온카메라 논란에 '체온'만 떼면 판매 허용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한 대형 매장에 설치된 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한 대형 매장에 설치된 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체온'이라는 표기를 하지 않은 '발열감시 카메라' 제품 판매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지 않기로 했다.

동일 제품이더라도 '체온측정 카메라(체온카메라)'는 식약처 관리 대상이지만 '발열감시 카메라'로 이름 붙이면 의료기기가 아니라는 의미다. 여전히 불명확한 기준이 문제로 남았지만 식약처 방침에 2개월여 간 끌어온 업계 논란은 다소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제품' 등장을 둘러싼 의료기기 인증 논란은 향후 정부 규제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지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

◇'규정대로' 했으니 문제 없다?...1200억원 수출 무산 '날벼락'

체온카메라를 제조하는 A사의 '국제판매 대리권' 계약서에 따르면 A사는 미국에 본사를 둔 보안업체 H사와 월 1만대, 1년간 12만대 체온카메라를 공급하기로 했다. 최소 1200억원이 넘는 규모다. 계약 조건으로 8월 말까지 2000대를 납품하고, 10월부터 월 1만대를 실어보내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8월 19일 체온카메라에 대해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식약처 조사를 받은 A사는 생산과 판매를 중단, 8월 말까지 2000대를 납품하지 못해 결국 계약이 무효가 됐다.

이유는 '의료기기 목적을 표방하려는 제품은 인증 받고 제조 판매할 것'이란 내용의 서약서를 식약처에 써냈기 때문이다. A사는 이 문서를 '생산·판매 중단'으로 인식했다. 행정적 이유로 인증도 받지 못해 결국 생산은 무산됐다. 서약서를 달리 해석하면 '의료기기 목적을 표방하지 않으면' 인증 없이 제조 판매가 가능하다는 뜻이지만, 이렇게 해석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식약처도 알려주지 않았다. 식약처는 A사 생산제품을 봉인하기까지 했다. A사 관계자는 “규제기관을 상대로 서약서 문구를 마음대로 해석할 강심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는 규정대로 했으니 전혀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식약처는 “체온측정 기능을 표방하는 열화상카메라업체에 대해 조사했으나 생산이나 판매를 중지하라고 명령한 사실은 없다”며 “체온측정 기능을 표방하지 않는 일반 제품은 얼마든지 판매와 수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식약처, 체온카메라 논란에 '체온'만 떼면 판매 허용

◇'체온측정' 홍보 난무하는데...형평성 의문

식약처가 유독 A사에만 행정력을 집중한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A사는 8월 말 식약처 조사를 받고 재고를 봉인당한 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식약처 압수수색까지 당했다. 반면에 온라인에서는 A사와 유사한 형태의 체온카메라를 판매하는 업체들이 버젓이 '체온을 정확히 측정해준다'는 광고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식약처, 체온카메라 논란에 '체온'만 떼면 판매 허용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11번가, 티몬 등 오픈마켓을 조사한 결과 정확한 체온 측정을 표방하는 체온측정카메라 제품이 다수 판매되고 있었다. 제품명에 '체온측정'이나 '체온전용'이라는 문구가 포함되기도 했고, 제품 상세설명에 '체온을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홍보 문구를 넣은 업체도 많았다. 한 업체는 “체온측정 오차 ±0.3도 이하 의료기 등급의 정밀 체온 측정”이라고 홍보했다. 숫제 '의료기 등급'이라며 의료기기로 오인하게 했는데도 판매가 계속됐다.

식약처, 체온카메라 논란에 '체온'만 떼면 판매 허용

◇'쉬운 길' 택한 식약처...'어려운 길'도 준비해야

식약처는 체온카메라 의료기기 논란과 관련해서 일단 '과장광고를 하지 않으면 인증 없이 판매해도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과장광고를 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게 이번 체온카메라 논란을 잠재우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광고에서 '체온' 문구만 삭제하면 의료기기법 위반 논란을 피해 제품 판매나 사용에 문제가 없어진다.

장기로는 식약처가 '어려운 길'도 준비해야 한다. 검역 정확도를 높이고 출입감시시스템과 연계한 무인체온카메라 시대를 열려면 체온측정 기능이 필수다. 오히려 해당 제품을 의료기기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철저히 관리할 필요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미국 FDA가 체온카메라를 의료기기로 분류하되,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일시 유예기간을 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근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체온카메라에 대한 체온계 분류, 의료기기 인증 기준, 인증 시험항목 등을 마련해야 한다.

식약처, 체온카메라 논란에 '체온'만 떼면 판매 허용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