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손정의는 왜 암(Arm)을 매각할까?

[미래포럼]손정의는 왜 암(Arm)을 매각할까?

정년퇴직 후 스스로를 디지털 토굴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한 지 5년이 지나고 있다. 디지털 토굴인 생활 묘미는 무한 상상력의 자유에 있다. 테크놀로지가 빚어내는 4차 산업혁명 요염한 자태에 취하고, 점점 격랑 속으로 빨려 드는 대한민국호에 수심 가득한 얼굴도 그려본다.

때로는 한 분야에서 전신전령(全身全靈)을 다하는 거인의 정신세계로 파고들어 결단의 순간을 훔쳐보기도 하다. 9월 손정의 SBG 회장은 100% 자회사이자 세계 최대의 반도체 설계 기업 암(Arm)을 엔비디아(NVIDIA)에 400억달러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AI 혁명 사령탑 기업인 암을 매각할까? 2016년 7월 손 회장은 240억파운드에 암을 전격 매수했다. “50수 앞을 내다 본 신의 한 수다. 암을 AI 혁명 시대 수정 구슬”에 비유하면서, 정보혁명가로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지구상에 1조개 암 칩을 뿌리고, 여기서 뿜어 나오는 초연결 지능 트래픽을 학습 및 추론하는 디지털 판게아(Pangaea) 비전을 역설해 왔다. 필자는 암 매각이라는 읍참마속의 결단 맥락을 다음과 같이 궁리한다.

첫째, 전략적 투자회사로써 제2 비전펀드(SVF)를 위한 군자금 확보다. 돌연히 나타난 '코로나19 유곡'에 빠져 갈팡질팡하는 기업군상을 보며, 과감한 M&A로 제3의 유니콘과 정보혁명을 가속화하기 위한 최정예 군단을 떠올렸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승부사 손정의는 지금이야 말로 AI 빅뱅을 위한 절호의 기회임을 포착했다.

둘째, 비전펀드 운용실적 악화에 대응하는 전방위 마방진(魔方陣) 책략이다. 암과 현재 AI군(群) 전략 진용으로는 AI 혁명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암과 엔비디아의 암묵적 협력 강화, IT 안정주식 확보에 의한 리스크 분산, 유망 유니콘 헌팅 등으로 방어력과 공격진 보강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셋째, AI 반도체와 자율주행 등 차세대 반도체 생태계를 겨냥한 포석이다. 세계 스마트폰은 암의 회로설계도에 기반을 둔 CPU를 탑재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세계 넘버1 영상처리 반도체(GPU) 기술을 자랑한다. 암 매각으로 두 거인의 신결합이 일어나고, 엔비디아 대주주로 남는다면, SBG와 양사를 잇는 황금률의 삼각형이 탄생할 수 있다.

넷째, 미·중 기술 패권 속에 암을 둘러싼 사업전략 불확실성, 알리바바그룹 편중 자산 포트폴리오에 투자가로서 위기 회피 본능이 작동했을 것이다. 여기에 NTT와 도코모 재결합을 목도하면서, 국내 통신시장 판도 변화에도 대응해야 하는 절박감이 엄습했을 것이다.

손정의 회장은 20년 전 인터넷 여명기에 자금 부족으로 세계 IT기업이 될 수 있었던 빅 찬스를 놓친 뼈아픈 교훈을 간직한다. 그런데 작금의 AI 혁명은 다시 천재일우 기회를 열고 있다. 그것은 무한대의 지능 데이터가 약동하는 만물지성 인터넷(Intelligence Internet of All Things) 시대 도래다. 당대의 정보혁명가를 자처하는 손정의 브레인은 새로운 야망으로 요동치고 있다. 필시 야망의 눈동자에는 만물지성 플랫포머로의 길을 헌걸차게 열어가는 SBG의 비전형 결사체가 어려 있지 않을까?

하원규 미래학자·디지털 토굴인 hawongy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