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 60년 연기자 정욱 "만족한 작품 없어…쓰러질 때까지 노력할 것"

사진=정욱 SNS 발췌
사진=정욱 SNS 발췌

60년 연기 인생의 배우 정욱이 대중과 만남으로 자신만의 연기를 완성해나가고 있다.

정욱은 1958년 국립극장 1기 교육을 수료한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연극무대는 물론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현시점까지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5060세대의 안방극장 기억에 자리한 '113 수사본부'와 '사랑과 야망' 등 시대의 명작을 비롯해 '다모' '서동요' '불멸의 이순신' '무신' 등 최근 안방극장 작품까지 출연해 근엄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선보이며 대중을 매료시켜왔다.

사진=정욱 SNS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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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극단 춘추와 함께 성황리에 종연한 '현혹(眩惑, 연출 극단 춘추, 예술공작소 몽상, 극단 아구아구)'를 비롯한 연극무대에서 60년 넘는 연기인생의 연륜과 에너지를 대중에게 깊이 전하고 있다. 정욱은 인터뷰 동안 연기 인생 속 주요 포인트를 회고하는 한편, 여전히 왕성한 연기 욕심과 대중 소통 포부를 드러냈다.

-60년 배우 인생의 첫 시작은 어땠는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접한 극단공연에 매료된 이후 매 공연마다 따라다니며 몰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연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됐다. 한국전쟁 직후였던 당시 최초의 국립극단 '국비'의 배우 모집 공고가 났었는데 '배우로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적극 응모했다.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당시 18명을 선발하는 공고에 1800명이 지원했으니 소위 100대 1의 높은 경쟁률이었는데, 운 좋게도 합격했고 그렇게 국립극장 1기생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전쟁 직후의 환경 속에서 활약하기가 어려웠던 소위 연기 대가라 할 만한 배우들이 국립극단 안에 모두 모여 있었다. 당대 최고 수준의 대우는 물론 시대를 통괄할만한 정통 연극 연기를 배웠다고 자부할 만하다.

연극 동거인(1969) 당시의 모습.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연극 동거인(1969) 당시의 모습.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그렇게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10년 가까이를 연극무대에서 열연해오다 점차 발전하는 연기 무대에 눈을 돌리게 됐다. 당시 재능 있었던 배우는 성우와 탤런트 등으로 발 빠르게 나아갈 때 뒤늦게 KBS 특채로 들어갔던 만큼 더 많이 부지런하게 연기를 했던 것 같다. 매주 2회 꼴로 10여년간 방영된 '113 수사본부'는 물론 TV 작품만 200여편 이상은 했다. 당시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는 야외신 등이 적었고, 세트 중심으로 구성된 탓에 대사 암기에 따라서 다양한 작품을 더해갈 수 있었다.

MBC 드라마 113 수사본부(1973~83) 당시의 모습.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MBC 드라마 113 수사본부(1973~83) 당시의 모습.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비중이 적은 캐릭터를 맡았던 터라 힘들 때도 있었지만 첫발을 내딛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갖고 있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재는 연기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 매력과 대사 전달 등을 가장 가까이서 잘 보여줄 수 있는 연극무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60년간 안방극장과 연극무대, 스크린 등을 오가며 연기를 해왔다. 단순 비교를 하기에는 어렵지만 어느 쪽에 더 호감을 갖고 있는지.

▲연기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고, 좋아하기에 예나 지금이나 어디가 좋다고 구분하기는 어렵다. TV 연기는 대중 만남이 더욱 잦고 개런티 측면에서 좋다(웃음). 또 일정 부분 성장한 이후 자신의 연기매력을 더 집중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안방극장이라 생각한다.

MBC 드라마 영웅시대(2004) 당시 정욱(가운데)과 이효정, 김성환 등이 함께한 모습.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MBC 드라마 영웅시대(2004) 당시 정욱(가운데)과 이효정, 김성환 등이 함께한 모습.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하지만 연기자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 요소를 키우고, 대중과 직접 소통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무대는 누가 뭐라 해도 연극무대가 아닐까 한다. 지금 연극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도 연극무대가 지닌 소통력과 자긍심, 배우로서 자의식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반세기 이상의 연기 활동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큰 어려움으로 뚜렷이 기억할 만한 것은 없다. 다만 연기자로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캐릭터 변신을 고민하던 시점이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젊은 나이에 로맨스 연기를 해오다가 안방극장에서 '113 수사본부' 연기를 거치면서 캐릭터가 시크하고 쿨한 이미지로 각인된 탓에 다양한 변신을 하기가 어려웠다.

MBC 드라마 113 수사본부(1973~83) 당시의 모습.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MBC 드라마 113 수사본부(1973~83) 당시의 모습. (사진=도서 정욱 배우인생 60년(출판사 동행) 발췌)

스스로 내적 갈등에 불과했지만 조금은 아쉬운 감이 있다. 이후 근엄한 아버지나 세련된 느낌의 회장직 등을 경험하면서 내면 갈등을 조금씩 덜어내고자 다짐하면서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젊은시절의 활동이 짧은 시간 안에 중첩된 것이 많았던 점이다. 앞서 말씀드렸듯 대사 암기에 따른 겹치기 출연이 가능했던 당시에는 작품 소화량이 너무 방대했기에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다.

사진=정욱 SNS 발췌
사진=정욱 SNS 발췌

하지만 노하우가 쌓인 덕분인지 80세가 넘은 지금에도 최근 종연한 연극 '현혹'에서 별 무리 없이 연기를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살고 있다. 직접 위기는 아니지만 소소한 어려움이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생각한다.

-수많은 작품을 거쳐 왔다. 최고의 작품을 몇 개만 꼽아볼 수 있을까.

▲지금껏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고 만족할 만한 작품은 솔직히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아쉬운 작품은 많다. 도스토예프스키 원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 원작 '전쟁과 평화' 등 당시에는 그저 연기에만 바빴던 작품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무심코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고 아쉽다.

KBS 드라마 부모님전상서(2004) 당시의 모습. (사진=KBS 제공)
KBS 드라마 부모님전상서(2004) 당시의 모습. (사진=KBS 제공)

이 작품을 다시 해볼 기회와 여건만 된다면 더욱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과 욕심이 남아있다. TV 작품도 자부심을 못 느끼기엔 마찬가지다. 제 연기에 대한 만족보다는 함께 열연했던 배우들과의 추억에 긍지를 느낀다. '최수종·장동건·고소영·고현정·황신혜 등 수많은 좋은 배우들과 함께 대중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었다'라는 마음이 만족감이라면 만족감이라 하겠다.

-여러 배우 중에 최고는 누구인가.

▲비슷한 시기 배우로는 신구가 있다. 드라마센터 출신으로서 함께 호흡한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볼 때마다 정말 연기에 진실성을 절절하게 담아내는 진지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후배로는 김희애와 이미숙 등 현시점에서 중견배우가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김희애는 정말 연기의 맛을 알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라 생각한다.

KBS 드라마 그녀가 돌아왔다(2005) 당시의 모습. (사진=KBS 제공)
KBS 드라마 그녀가 돌아왔다(2005) 당시의 모습. (사진=KBS 제공)

이미숙은 드라마 '황진이'를 통해 만났을 때 일화로 단번에 각인된다. 기생 황진이와 화담선생의 관계설정을 바탕으로 함께 연기를 했는데 정말 술에 취한 듯한 모습과 예의를 지키는 캐릭터 본연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것을 봤다. 자질이 대단한 친구라 생각한다. 이들 외에도 앞서 말했던 소위 '스타급' 배우가 모두 대단한 친구다. 연기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배우 모두가 나름의 연기력과 열정을 지닌 사람으로 아직도 많이 배우고 있다.

-지금까지 지탱해온 원동력은.

▲제가 연기에 뛰어든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상황도 환경도, 대중의 생각이나 향유하는 문화도 정말 다양해졌다. 이토록 변화한 환경 속에서 단 한 가지 놓지 않고 온 것이 있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다. 단순히 연기 활동을 경제적인 것이나 인기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천직'이라 생각하고 내 스스로의 열정을 놓지 않았던 것이 예나 지금이나 배우 정욱의 기본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엔터테인&] 60년 연기자 정욱 "만족한 작품 없어…쓰러질 때까지 노력할 것"

-매체도 무대도 많아진 지금은 배우 모습도 다양해지고 있다. 후배에게 조언할 만한 것이 있다면.

▲부정적인 말일 수 있지만 연기에 몰입해서 자신을 잘 표현하기만 하면 대중과 소통이 자유로웠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에는 연기 하나만 갖고 뭘 하기에는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개개인마다 스스로 연기정론이 잡혀있지 않고 인기 영합에 급급한 것이 아쉽다. 물론 안방과 연극작품도 독특하고 자극적인 것들만 무수히 많은 현실도 안타깝다.

[엔터테인&] 60년 연기자 정욱 "만족한 작품 없어…쓰러질 때까지 노력할 것"

배우나 작품 모두가 연기력 자체보다 비주얼부터 캐릭터 성격 등 돋보이는 것에만 사로잡혀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 등등은 다소 등한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교육현장부터 일선 배우, 연출진까지 연기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잡고 오랫동안 다양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연기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할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계획이 궁금하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연극공연 무대가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공연계는 물론 스스로도 많은 준비를 해나가고자 한다. 단순히 오픈돼 있는 연극작품이라 꾸역꾸역 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작품 가운데 내 연극이 매력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더욱 다듬고 준비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엔터테인&] 60년 연기자 정욱 "만족한 작품 없어…쓰러질 때까지 노력할 것"

60주년 기념 '서교수의 양심' 연극 리메이크 등 여러 작품을 검토하면서 연극무대에 더 많이 서고자 노력할 것이다. 아직 내 연기에 완전히 만족한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듯 만족을 위한 행보를 거듭할 것이다. 쓰러질 때까지 연기자로서 내 만족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연기를 보는 대중에게 한마디 하자면.

▲연기자만큼이나 관객도 더욱 깊이 있게 다가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치졸한 치정극의 롱런을 볼 때면 연기자로서 관객으로서 답답한 마음이 있다. 너무도 좋은 배우와 다양한 작품이 있는데 단순히 치정극에 몰입하는 현 상황이 좀 아쉽다.

사진=정욱 SNS 발췌
사진=정욱 SNS 발췌

누구나 자신의 인생 방향과 작품관은 갖고 있을 것이다. '시각을 어떻게 갖고 이끌어나가는가'는 생각해봤으면 한다. 정부나 공연, 방송계도 조금은 아쉽다. 관객을 끌어들일 만한 좋은 작품을 만들기에 여건이 부족한 것은 안다. 하지만 포퓰리즘식으로 흔적만 남기는 듯한 지원 방식이나 작품제작 구조는 대중이나 국가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 분명한 인사이트와 함께 정책적인 부분도 감안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박동선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dspark@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