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칼럼] 중국 실용신안을 논하다

이종기 중국 China Science(中科) 특허법인 변리사
이종기 중국 China Science(中科) 특허법인 변리사

이종기 중국 China Science(中科) 특허법인 변리사

몇 년 전 한국의 A 중소기업이 장갑을 낀 채로 휴대폰 화면을 넘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업체는 이 기술을 적용한 장갑을 중국 타오바오를 통해 중국에 판매하였는데 소비자 반응이 상당히 좋았고 판매량도 급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의 여러 업체에서 이 기술이 자사의 실용신안권을 침해하였다면서 경고장을 보내왔다. 타오바오도 자체 조사 후 일방적으로 A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이 회사의 계정도 폐쇄해 버렸다.

결국 중국 판매가 막혀버린 이 회사는 경고장을 보낸 중국 업체에 대응하려고 했으나 상대해야 할 대상도 많고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결국 대응을 포기하고 중국시장에서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위엔더셩(源德盛)이라는 업체는 셀카봉을 개발한 후 이를 실용신안으로 등록 받아 중국, 미국, 유럽, 한국 등에도 출원해 권리를 확보했다. 이 셀카봉이 중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자 여기저기서 모조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모조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갔다. 셀카봉의 기술이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니어서 모방하기 쉬웠던 것도 모조품 양산에 한 몫을 했다.

이에 위엔더셩은 모조품 생산 업체들을 대상으로 실용신안권을 무기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모조품 업체에 경고장을 보내 판매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부 모조품 업체는 오히려 위엔더셩의 실용신안권이 무효라면서 무효심판을 청구하였다. 모조품 업체들이 제기한 무효심판이 28건이나 되었고, 현재까지 19건의 무효심판 결과가 나왔는데 중국 복심위원회(우리의 특허심판원)는 모두 위엔더셩의 손을 들어주었다.

또한 2015년부터 지금까지 위엔더셩이 실용신안권 침해자를 대상으로 약 4,000여 건에 이르는 크고 작은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이 중 현재까지 최종 결과가 나온 1,386건 모두 위엔더셩이 승소하였다. 무효심판, 소송 등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분쟁을 통해 위엔더셩이 벌어들인 손해배상금만 해도 최소 수십억원이 넘는다.

위 두 사례는 중국 실용신안권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A 기업은 중국에 자사가 개발한 제품을 판매하면서 특허, 실용신안 출원 전략의 부재로 원천기술임에도 역으로 공격당하고, 끝내 사업을 완전히 접고 중국시장에서 철수하였다. 만약 이 A업체가 중국 실용신안이라도 출원했더라면 분명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위엔더셩의 경우 자사가 보유한 실용신안권을 무기로 수많은 침해자를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결국 중국내 셀카봉 시장의 선두업체가 되었다.

중국의 연간 실용신안 출원량은 어마어마하다. 2019년에 출원건수가 220만 건이 넘어섰고 2020년에는 코로나 기간 중임에도 실용신안 출원건수가 전년동기대비 22.3%나 증가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은 실용신안 출원건수가 특허(2019년 142만 건) 보다 훨씬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특허가 약 22만 건임에 반해, 실용신안은 약 5,400여 건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중국 중소기업은 특허보다 실용신안에 더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기업은 왜 이렇게 실용신안에 집중할까? 그것은 그만큼 기업에 유용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중국 실용신안이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은 실체적인 심사 없이 등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심사관은 실용신안에 대해 신규성(유사한 기술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 여부) 위반여부 등 초보적인 심사만 하고 등록여부를 결정한다. 실용신안이 무심사로 등록이 가능한 관계로 여러 가지 유리한 점들이 있다.
 
첫째, 권리를 빨리 획득할 수 있다. 특허의 경우 실체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출원부터 등록받기 까지 통상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중국 실용신안의 경우 간단한 실체적 심사(신규성 위반여부)만 거치기 때문에 통상 6개월이면 심사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이렇게 심사결과가 빨리나와 등록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기업에게 매우 중요하다. 기업이 개발한 기술이 하루라도 빨리 시장에 나오도록 하는 것은 경쟁에서 우세적 지위를 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 비용이 저렴하다. 출원료, 연차료 등 기본적인 비용이 특허의 1/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다 특허의 경우 등록되기까지 여러 번의 보정과 의견서 제출을 해야 하므로 이런 것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실용신안은 그런 절차가 대폭 줄어들므로 이에 따른 비용까지 감안하면 특허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이 소요된다.

셋째, 실체심사 없이 등록되지만 권리의 안정성 측면에서는 특허와 비슷하다. 무효여부 판단에 있어 특허는 연관분야 및 인접분야의 여러 개의 선행기술의 조합으로 진보성이 부정될 수 있지만, 실용신안은 동일 기술분야의 기술 그것도 2개 이하의 선행기술 조합으로만 진보성 여부를 판단하므로 특허에 비해 오히려 무효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 권리 획득은 쉬운 반면 권리를 무효 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권리자에게는 매우 유리한 제도라 할 수 있다.

넷째, 실용신안이 쉽게 권리를 획득하였다고 해서 권리행사에 어떠한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권리행사시 특허든 실용신안이든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특허와 마찬가지로 권리취득과 동시에 바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손해배상금에 있어서도 특허와 큰 차이가 없다. 역설적이게도, 현재까지 중국에서 최고의 손해배상금 판정을 받아낸 건 특허가 아닌 실용신안이다.

그렇다면 중국 실용신안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은가?

Life-Circle이 짧은 기술, 기술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은 실용신안으로 출원하는 것이 좋다.
최근 기술의 Life-Circle이 점점 짧아져, 예컨데 기술수명이 2~3년 밖에 안 된다고 하면, 특허의 경우 등록 받는 그 순간 다른 기술로 대체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기술의 경우 특허를 받아도 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게 된다. 따라서 이처럼 Life-Circle 짧은 기술은 실용신안이 훨씬 효과적이다. 신속히 권리를 획득하여 그 기술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시간을 그만큼 더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기술로서 조속히 시장에 출시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실용신안은 유용하다.
경쟁사와의 관계 등을 고려, 자사의 제품을 조속히 시장에 출시하고자 하는 경우, 특허는 등록까지 2년 가까운 시일이 소요되므로 자칫 경쟁사에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럴 때에는 실용신안으로 신속히 권리를 획득하여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제조방법이나 장치 및 기계의 본체는 특허로, 부품이나 소모품은 실용신안으로 출원하는 것이 좋다. 중국 실용신안은 특허와 달리 물품에 대해서만 출원이 가능하다. 부품의 경우에도 가장 핵심적인 부품은 특허로, 나머지 부품에 대해서는 실용신안으로 출원하는 것이 비용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어떤 제품의 경우 많은 부품들이 있는데 이 부품들에 대해 모두 특허로 출원하면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고 때로는 그러한 부품들이 특허등록 조건에 부합하지도 않을 수 있어 거절되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중출원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은 특허와 실용신안의 이중출원이 가능하다. 즉 동일한 기술에 대해 특허와 실용신안 동시에 출원할 수 있다. 이중출원을 하게 되면 당연히 실용신안을 먼저 취득하게 되고, 추후에 특허가 등록되면 실용신안권을 포기하고 특허권을 획득하면 된다. 즉, 이중출원은 우선 실용신안으로 빠른 권리확보와 조속한 권리행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놓고, 나중에 특허로 보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권리보호를 도모할 있는 매우 유용한 제도이다.

게다가 특허는 실체심사를 거치므로 최종 등록되는 특허의 권리청구범위가 실용신안의 권리청구범위와 달라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경우에는 실용신안권과 특허권을 동시에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꿩 먹고 알 먹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이중출원에서 실용신안은 시간적으로 특허의 공백 기간에 대한 보완적 기능을 하게 된다. 즉, 특허는 공개 후에 심사를 하기 때문에 공개단계에서 기술이 노출이 되고 경쟁 업체가 이를 개량해서 유사한 기술을 모방할 수 있으므로, 공개 후 등록까지의 기간 내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공백 기간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이중출원하게 되면 실용신안 획득 후 발명이 공개가 되므로 실용신안이 발명의 공개로 인해 제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충해 준다. 먼저 실용신안권을 취득해 특허권이 나오기 전까지 실용신안권으로 해당 기술을 보호하고, 제품에 대한 광고, 선전 등의 기업경영활동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 실용신안은 우리나라 실용신안과는 달리 기업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우리기업들이 중국 실용신안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특허나 실용신안이나 거의 동일한 심사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기업입장에서 실용신안에 대해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중국 실용신안은 저렴한 비용으로 권리를 조속히 취득할 수 있는 한마디로 ‘가성비 짱’인 제도이다.

자사의 기술로 중국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우리 기업이라면 수많은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중국시장을 효율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비장의 무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 실용신안이 바로 타인의 침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방패 역할을 함과 동시에 때론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강한 창의 역할도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라 할 수 있다. 우리 기업이 중국 실용신안을 손에 들고 광활한 중국 시장을 종횡무진 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