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펀치]<187>바담풍하는 선생과 모른척하는 제자

[정태명의 사이버펀치]<187>바담풍하는 선생과 모른척하는 제자

“선생님이 틀렸어요.”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던 학생이 선생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간혹 발생한다. 자신은 '바담풍(風)'하면서 학생들에게 '바람풍'하라던 혀짤배기 선생의 가르침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던 과거 속담은 완전히 옛이야기가 됐다. 틀리면 틀렸다고 말하는 학생의 태도가 신선한 젊음으로 다가온다. 선생이라면 무조건 옳으니 순종하라는 과거의 우격다짐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 지능정보화 사회답지 않게 바담풍을 요구하는 선생과 이를 추종하는 사람이 흔히 보인다. 시대를 역행하는 세태가 안타깝다.

[정태명의 사이버펀치]<187>바담풍하는 선생과 모른척하는 제자

자신은 바담풍하면서 학생에게 바람풍을 요구하는 선생은 틀렸음을 알면서도 우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선으로 실체를 가리고 변명하기에 분주하면서 선생 자리를 유지하기 분주하다. 가르칠 자격이 없는 경우다. 때로는 자신이 바담풍으로 발음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자기 성찰이 전혀 없어 틀림도 모르고, 틀려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또 다른 경우는 바르게 발음할 수 없는 경우다. 능력 부족이 이유다. 이들은 모두 선생의 자격이 없다.

바담풍을 강요하는 선생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자기 반성을 하지 않거나 자기 성찰을 추후로 미룬다. 뒤돌아보면 양심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모순을 바라보고 있음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간혹 자기 성찰을 하지만, 여러 개 잣대를 갖고 필요에 따라 평가를 달리한다. 또, 잘못된 가르침이 가져올 결과를 애써 고민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의 미래는 큰 관심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와 현실이 더욱 중요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태명의 사이버펀치]<187>바담풍하는 선생과 모른척하는 제자

더욱 심각한 현실은 학생들이 이를 모른척한다는 사실이다. 선생이라는 권위에 억눌려 잠잠하기도 하고, 성적과 평가를 담당한 이에게 피해받지 않으려는 기회주의도 만연한다. 내 편이기 때문에 눈을 감아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바담풍하는 선생의 편에 서서 틀림을 지적하는 행위를 비난하기도 한다. 어떤 연유든 잘못된 가르침을 강요하는 선생에게 무조건 추종하는 것은 비겁하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때 옳은 것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정의와 공평을 담보하기 위해 바담풍을 고집하는 선생은 교단에 설 수 없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동일하게 이익을 나눠 갖는다고 공평사회는 아니다. 권력이 약자를 보호한다고 정의사회가 구현되지는 않는다. 약자도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강자는 이를 수용하는 풍요로움이 정의사회 근간이다. 힘이 있다고 자신이 옳다고 우겨대고, 추종자들을 설득하려 해도 진위는 변하지 않는다. 틀린 것을 가르치는 선생과 이를 모른척하는 학생이 존재하는 한 미래는 밝지 않다.

[정태명의 사이버펀치]<187>바담풍하는 선생과 모른척하는 제자

바람풍을 강요하는 부류는 선생만이 아니다. 정치·교육·언론·종교를 막론하고 자신은 바담풍하면서 다른 이에게는 바람풍을 기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틀림을 발견하면 겸허하게 인정하고 자신을 혁신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주변을 경청해야 한다. 물론 주위에 틀림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한 얘기다. 지능정보화로 잘잘못이 가릴 수 있겠지만 사람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회 갈등만 커질 뿐이다. 잘잘못의 인정과 고침은 미래의 발전을 위한 지렛대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