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땅 속 세계를 보여주는 지도, 지질도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김복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
<김복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

1793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확산되던 시절 운하 공사를 감독하던 윌리엄 스미스는 공사장에서 나오는 암석들이 여러 개 지층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흥미롭게 생각했다. 이후 그는 약 20년 동안 잉글랜드, 웨일즈 등 영국 방방곳곳을 다니면서 각 지역에서 관찰되는 지층 특성과 이에 포함된 화석을 연구했다. 그 결과를 영국 지형도 위에 선, 색체 등으로 지층을 구분해 표현한 도면을 발간했는데 이것이 인류 최초 지질도다. 1815년 발간된 이 지질도를 통해 인류는 땅 위는 물론 땅 밑 지하의 보이지 않는 지층 분포까지도 과학적으로 유추해 낼 수 있게 됐다.

현재 영국 런던 피카딜리 북쪽에 있는 벌링턴 하우스에 보관된 가로 2m, 세로 3m에 이르는 이 세계 최초 지질도에는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지층 및 스코틀랜드 일부 지층에 대한 개설'이라는 제목과 함께 'W. Smith, 1815년 8월 1일'이라는 서명·날짜가 적혀 있다.

이 세계 최초 지질도는 '지질학'이라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알렸다. 이후 국가나 개인이 오일, 철광석, 석탄 개발 등을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일궈 내는 기반이 됐고, 특히 스미스의 화석연구 결과는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완성하는 근거를 제공했다. 새로운 과학의 발견이 중세의 종교적 교의를 걷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본관에는 두 개 지질도가 걸려 있다. 하나는 '대한지질도', 다른 하나는 '한국지질도'다. 연구원 직원들은 물론 연구원을 방문하는 내방객을 위해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연구원의 대표 연구성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가 등록문화재(604호)인 대한지질도는 1956년 국내 지질학자들이 제작해 발간한 우리나라 최초 100만분의 1 축척 지질도로, 한반도 전체 지질 구성과 암석 분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1945년 해방 후 3년간 한국전쟁을 겪은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우리 학자들이 국토를 처음으로 조사해서 발간한 지질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한국지질도는 대한지질도를 기초로 해 1981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됐다. 그리고 2020년, 올해 드디어 3차 개정판을 발간했다. 우리 땅의 백과사전격인 한국지질도를 해방 이후 75년 만에 남한과 북한의 최신 지질자료를 총망라해 세계적인 수준의 완성도를 가진 지질도로 발간하게 돼 대한민국 지질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질도는 지구 표면, 즉 땅의 겉면에 드러나 있는 암석의 종류와 분포, 지질구조, 지층 상태 등을 지형도 위에 기호, 모양, 선, 색채 등으로 표현한 도면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질도를 제작하는 곳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유일하다.

현재 연구원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축척(1/2,500·1/2.5만·1/5만·1/25만·1/100만)의 지질도를 만들어 민간부문에 제공해 국토개발·환경·자원·재해·관광·안보·기간사업 등에 핵심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요즘과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원 데이터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2·3차 정보나 빅데이터는 무용지물이 된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 밖에 나올 것이 없는 것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발간되는 지질도는 지난 100여년간 백두대간 등 전 국토를 조사하고 연구해 확인된 다양한 지질요소들을 정리한 국가지질 정보의 근간이다. 최근 연구원에서는 2차원 종이 도면 지질도 외에도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데이터 처리기술을 활용한 3차원 디지털 지질도나 시간 개념까지 도입한 4차원의 통합 지질정보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 시대변화에 따라 지질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어 연구원은 디지털 매핑 등 변화와 혁신 트렌드에 부합하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관련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복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 kbc@kiga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