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희생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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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감명 깊게 읽은 동화 가운데 자신의 팔뚝을 구멍 난 둑에 쑤셔 넣어 둑 붕괴를 막은 네덜란드 소년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 소년은 추운 날씨에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둑의 구멍을 팔로 막고, 어른이 올 때까지 힘겹게 버텼다. 소년의 희생정신 덕분에 둑 붕괴를 막고, 나아가 마을이 침수되는 화를 면했다.

희생의 가치는 숭고하다. 지금도 작은 희생이 모여 사회를 더욱 살기 좋게 해 준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20년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최일선에 있는 의료진부터 방역 담당자, 공무원 등 많은 사람의 희생과 헌신이 K-방역을 만들었다. 정부의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영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소상공인부터 자가 격리를 준수하는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희생이 없었다면 방역 모범 국가가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3차 대유행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26일 신규 확진자가 583명에 이르렀고, 이후에도 증가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총파업을 강행하고, 소규모 집회를 곳곳에서 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10인 이상 집회 금지에 따라 9명씩 나누는 형태로 여러 곳에서 집회를 연다. 민주노총 지도부 역시 코로나19 상황을 의식한 듯 방역 지침을 준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파업과 집회 강행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방역 지침을 준수한다지만 모이고 해산하는 과정에서 감염 위험이 높다. 총파업 참여율이 저조한 것을 보면 사실상 조합원의 지지도 낮음을 알 수 있다. 과거 광복절을 전후해 보수단체가 집회를 개최, 많은 비난을 받았다. 물론 지금의 민주노총 집회와 방역지침 준수 정도에서 차이는 있다. 국민 대다수의 우려 속에서 집회를 강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행동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