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너는 몇 살이니?"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 지금 가장 핫한 1934년생 영국 작가 '로즈 와일리'

단발머리에 미니스커트, 레깅스와 운동화를 신고 6m짜리 초대형 캔버스를 놀이터 삼아 아이 같은 그림들을 그려내는 영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 '로즈 와일리'의 나이는 올해로 86세.

흔히들 '인생은 60부터!'라고들 이야기할 만큼 과거에는 노년층으로 분류되던 나이대의 사람들이 건재한 모습과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청년층에 못지않은 열정을 과시하기도 하는데 영국 할머니 '로즈 와일리'의 전성기는 70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로즈 와일리는 만학도는 아니었다. 화가를 꿈꾸며 미대에 진학하였으나 21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해 20여 년간 평범한 가정주부로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즈 와일리의 출생연도가 1934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 정도가 지난 1955년 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합국 중 하나였던 영국 태생의 로즈 와일리는 격변의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많은 여성들 중 한 명으로 살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녀가 다시 그림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런던에 위치한 영국 왕실 예술 학교(Royal College of Art)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이고 당시 그녀의 나이는 45세였다고 하는데 솔직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나이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뒤늦게 다시 붓을 손에 쥔 그녀가 빛을 발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76세의 일이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서 로즈 와일리를 신진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했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작품들도 재조명되며 인지도가 상승하게 되었다.

현재는 독일 출신의 갤러리스트 '데이비드 즈워너'의 이름을 따 뉴욕 소호에서 시작된 동명의 갤러리에 전속작가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는 '야요이 쿠사마', '제프 쿤스' 등의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속한 세계 3대 갤러리 중 하나이다.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핫하디 핫한 '로즈 와일리'의 작품들을 두 눈으로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오늘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시작되는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이다.

'툴루즈 로트렉 展'이 열렸던 한가람미술관 1층의 제1 전시실과 2 전시실 모두를 활용한 이번 전시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로즈 와일리 개인전으로 기대를 모았다.

원화 150여 점이 포함되어 전시된 로즈 와일리의 작품들은 모두 진품이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컬렉터들이 소장했던 귀한 작품들까지도 감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공간은 총 여덟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지는데 로즈 와일리의 일상과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테이트 모던의 VIP 룸, 역사나 뉴스 등을 통해 영감을 받은 아카이브,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아름다움,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를 주제로 한 공간, 소녀스러운 로즈 와일리의 자화상, 로즈 와일리의 아틀리에를 재현한 공간 등으로 채워졌다.

마치 일기를 쓰듯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그려내는 '보통의 시간' 섹션을 지나면 영화를 좋아하는 로즈 와일리가 느꼈던 감동과 흥분을 애정을 담아 그려낸 '필름 노트' 영역이 펼쳐진다.

영국의 대표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VIP 룸에 전시되어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이번 전시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회화와 드로잉, 조각 작품들까지 영국에서는 허가된 인원만 관람이 가능했던 공간 속 작품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셈이다.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과거의 인물을 현세의 인물로 얼굴을 대체하여 그림을 그려내는 로즈 와일리의 작품들은 대중에게도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영감의 아카이브'에서 솔직하다 못해 순수한 그녀의 캔버스 속 생각들을 읽을 수 있다.

생명체에 대한 로즈 와일리의 시선 역시도 범상치 않다. 동식물을 구분 짓지 않는 그녀의 소재에 대한 애착은 '살아있는 아름다움'이라는 섹션을 통해 반영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곤충이나 반려동물 들도 그녀만의 세계 속에서 재탄생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손흥민 선수를 그린 최신작들이 전시된 공간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로즈 와일리는 토트넘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선수 손흥민의 활약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시장에서는 그녀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손흥민 선수의 응원 메시지를 포함해 그와 온라인을 통해 주고받은 내용을 이미지화한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자신감 넘치는 소녀 시리즈의 작품들과 그녀의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도 매력적이었고 '권순학' 작가가 재현한 로즈 와일리의 아틀리에 영역도 인상적이었다. 영국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을 그대로 축소해 옮겨놓은 듯한 공간 속에서 로즈 와일리의 열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 '로즈 와일리'와 그녀의 작품을 통해 느끼게 된 감정들

모두가 경험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이 로즈 와일리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 넘치는 표현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지 않을까 한다.

전시공간을 모두 둘러보고 나왔을 때 전시 관계자로부터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따뜻한 전시였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커다란 전시공간을 꽉 채울 정도로 압도적인 사이즈의 작품들이었지만 그저 친숙했고 사랑스러웠으며 정말 따스했다.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혹자는 로즈 와일리의 작품들이 어린아이의 낙서 같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번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을 보면서 느낀 것은 훈훈함이었다. 86세의 할머니 작가라서 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 느끼는 많은 것들에 대해 느껴지는 그대로를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요즘 말로 '꾸안꾸'스러운 로즈 와일리의 패션처럼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고 평범하면서도 검소한 듯 보이는 그녀의 단아함이 작품에서 묻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그녀의 '아틀리에' 공간이 재현된 곳을 보며 로즈 와일리가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즐겁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방에 물감이 튀어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신나게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스스로 '나는 그녀의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리는 로즈 와일리는 어린 시절 세계대전을 몸소 경험했고 가정주부로서의 경력단절을 체험했으며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향해 정진해왔다.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을 보면서 자신의 꿈이 무엇이든 아직 늦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하나의 계기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적어도 아직 여든 중반의 나이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