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귀가 열린 선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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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포럼]귀가 열린 선각자

1954년 미국의 한물간 52세 세일즈맨 레이 크록은 밀크셰이크 믹서를 팔며 전국을 돌아다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식당 하나를 발견한다. 주문한 지 30초 만에 햄버거가 나오는 속도와 몰려드는 수많은 인파, 강렬한 황금 아치에 매료된 크록은 며칠 뒤 식당 주인을 찾아가 프랜차이즈를 제안한다. 설득 끝에 계약을 체결하지만 의욕 왕성한 사업가 크록과 원칙주의 식당 주인은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다. 답답함을 느낀 크록은 의견을 무시한 채 사업을 확장하기로 한다.

그러나 지점을 전국으로 넓혀 나가면서 제조공정, 고객 대응과 프랜차이즈 운영이 꼬이기 시작하며 난관에 봉착한다. 급기야 3개월이나 연체된 빚 문제로 은행을 찾아가 사정을 해보지만 해결하지 못한다. 허탈한 마음으로 뒤돌아 나오다가 귀인을 만나 기사회생한다. 옆 창구에서 우연히 딱한 사정을 들은 회계사가 뒤따라오면서 말을 걸어와 이를 귀담아들은 크록은 기적같이 회생한다. 회계사는 여러 경영 기법을 조언하면서 크록을 세계 최고의 프랜차이즈 회장으로 만든다. 크록에게 귀가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성공담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는 많은 결정권자가 있다. 산·학·연을 비롯해 정부까지 여러 상황을 읽고 판단해서 재빠르게 결정한다.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뛰어났기 때문에 그 자리에까지 올라갔으며,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 가운데에는 귀까지 열린 사람이 있다. 소수지만 상황을 귀담아듣고서 더 신중하게 결정한다. 자신의 캐리커처에 큰 귀를 강조한 명함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 다른 사람 말을 먼저 경청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5선 의원을 지낸 어떤 사람은 현역 시절에 틈만 나면 직위와 나이 불문하고 전문가를 불러 지식과 혜안을 받아들이곤 했다.

빠른 경제 성장이 지상 최대 과제이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상대 얘기를 제대로 경청한 뒤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기나 타협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에 관한 가르침은 받았지만 합리 타당한 시민이 돼야 한다는 것은 놓쳤다. 열심히 노력은 하지만 상대 의견을 받아들이고 협업할 줄은 모르니 어리석을 따름이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자신 얘기만 계속 떠들 뿐이다. 초연결 사회에서 치명상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우리는 좁은 국토에 인구밀도는 높아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만이 답이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아집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엄정한 중용의 마음으로 창을 열고 통계와 지표에 기반을 둔 판단을 해야 한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성공한 사람의 분석 결과를 보면 그들은 많이 읽고(읽기), 잘 기록하고(쓰기), 공유하고(말하기), 조언(듣기)을 구하면서 이를 지속 반복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지양하고, 다른 각도에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상대 말을 깊이 경청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안을 마련해서 손을 맞잡는 방법을 지금부터라도 깨닫고 행해야 한다. 무턱대고 '어떻게 할까'부터 시작하지 말고 '왜'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문제를 풀기보다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서로가 승리할 수 있는 협상과 타협의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이 대한민국을 살기 좋은 선진국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2021년 정월이다. 인사철로 임면에 바쁜 시절이다. 새 자리에서는 좀 더 깊이 경청하는 낮은 자세가 기대된다.

신상철 WFK/우즈베키스탄IT자문관 ssc03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