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기자수첩]"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엄마, 나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돼?” 살면서 이런 소리를 들을 줄 몰랐다. 공부는 제법 했다. 사연은 그랬다. 얼마 전 무척 추웠을 때였다. 취재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뻗치기'를 하고 있었다. 뻗치기는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이 나타나기만을 무작정 기다리는 일을 이르는 언론계 은어다. 공식 취재 경로를 통하지 않는 만큼 이른바 '단독기사' 거리를 건질 공산이 높다. 그러나 성공률은 희박하다. 잡상인 취급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문전박대는 다반사다.

뻗치기 중간에 급히 처리할 기사가 있어서 10여분 동안 노트북 자판을 두들겼더니 손이 얼었다. 손을 녹일 요량으로 바람이 덜 부는 계단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언 손을 오금에 찔러넣었다. 그런데 중심을 잃고 그 자세에서 옆으로 쓰러졌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세가 좀 우스워서 그 상태로 키득거렸다. 잠시 후 “나중에 저렇게 돼?”라는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폐부 깊숙이 찔러 올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그렇게 생겼구나'와 '확률형 아이템'이었다. 순간 왜 확률형 아이템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게임은 '때깔'이 모두 수준급이다. 스킨만 갈아 끼운 듯 성공한 게임 문법을 모두 따라 해서 그렇지 못 만든 게임은 없다. 이 때문에 잘 만든 게임이라 해도 확률형 아이템 존재만으로 플레이해 보지도 않은 이들에게 매도되기 일쑤다. 이용자가 몰라서가 아니다. 학습효과다. 이용자 머릿속에는 '어차피 뽑기 게임'이란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용자가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다.

업계는 상품성 좋은 게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든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용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마치 누가 봐도 불쌍한 모습으로 길바닥에 쓰러져 있으면서 혼자 아니라고 우기는, 옆으로 쓰러져 있는 나와 같다. 게임업계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이용자가 외면하는 상황을 면치 못할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가혹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게임 본연의 재미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공부'가 필요한 때다. 이용자의 피로감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